[송석주의 컷] '미키17'에서 봉준호 감독이 찾고자 했던 것은?

입력 2025-02-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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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봉준호 감독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늘 무언가를 찾으러 다녔다. 그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는다. 이웃집 개 소리에 예민해진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 분)가 강아지를 납치하고, 아파트 경비실의 경리 직원 박현남(배두나 분)이 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시간강사와 경리 직원 그리고 강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단순하면서도 기묘한 소동극은 사회적 격차로 인한 구조적 갈등이 빈부가 아닌 빈자 사이의 대립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최약체는 인간이 아니라 비(非)인간인 강아지다. 봉 감독의 영화적 씨앗이 데뷔작에서부터 발아하고 있었던 셈이다.

봉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살인의 추억'(2003)에서 희대의 연쇄 살인마를 찾는다. 영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2019년에 이르러 범인이 밝혀졌지만,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장기 미제 사건이었다.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서 애타게 찾았던 것은 특정 범인이 아니라 그 시대 자체였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군부 독재, 불법 고문, 무능한 경찰 등의 이미지는 각종 비리와 인권 유린으로 얼룩졌던 한국 현대사의 암울한 단면을 상징한다.

이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이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폭압적인 군부 독재 아래 존엄한 삶을 빼앗긴 시대적 희생자였음을 시사한다. 셀 수 없는 익명들이 연루된 장기 미제 사건을 끊임없이 스크린 위로 호명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괴물' 스틸컷 (쇼박스)
▲영화 '괴물' 스틸컷 (쇼박스)

그의 세 번째 영화 '괴물'(2006)은 괴물에 의해 납치된 딸 현서(고아성 분)를 찾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주한미군 군무원과 그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한국 군인의 독극물 방류가 괴물 탄생의 원인으로 제시된다. 괴수 영화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이 작품은 '미국의 개입'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한국의 순응'이라는 내부적 요인이 맞물려 결국 어린 소녀가 희생되는 비극이 초래됐음을 고발한다.

아버지 박강두(송강호 분)는 괴물을 처단하고 현서를 찾지만, 딸은 이미 죽었다.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괴물이 탄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끝까지 찾지 못한다. 대신 그는 길가에 버려진 한 고아 소년을 찾는다. 영화는 강두와 소년이 함께 따뜻한 밥을 먹는 장면으로 끝난다. 봉준호식 휴머니즘이다.

이후의 영화에서도 '무언가를 찾는' 패턴은 지속한다. '마더'(2009)에서 엄마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서고, '설국열차'(2013)의 꼬리칸 하층민들은 머리칸에 사는 상층부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다. '옥자'(2017)의 시골 소녀는 집 나간 돼지 옥자를 찾기 위해 미국 뉴욕까지 간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문광(이정은 분)의 초인종 소리 이후 플롯이 꺾이는데, 꺾이는 플롯에 의해 이야기는 지하로 흐르기 시작한다. 봉 감독이 정말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지상과 반지하의 코믹한 대립이 아니라 반지하와 지하의 참혹한 생존 경쟁이었다. 한국 가옥 형태를 통해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계급 간 보이지 않는 벽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지하실에서 숨어 사는 근세(박명훈 분) 부부의 존재를 은폐하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반지하 사람들이 도리어 지하로 타락하는 불운한 결말로 끝난다. 숨겨진 지하 공간을 찾았지만, 결국 그곳에서 아무도 구출할 수 없었다는 데 이 영화의 비극성이 있다.

▲영화 '미키17'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17' 스틸컷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봉 감독의 신작 '미키17'에서도 '찾기' 패턴은 유지된다. 영화에는 죽는 게 직업인 인간 소모품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등장한다. 끊임없이 죽고, 새롭게 태어나는 그는 영생의 삶을 산다. 정확히 말하면, 영생의 삶을 누린다기보다 멍에처럼 등에 짊어지고 있다.

불사불멸(不死不滅)의 미키는 비록 죽더라도 한 번의 삶을 존엄하게 살아내고 싶어 한다. 이 지점에서 봉 감독은 인간다움을 넘어 '생명다움'을 찾아 나선다.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영화에 등장하는 크리퍼처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동일하게 품고 있는 열망이기 때문이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봉 감독의 신작 '미키17'은 28일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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