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김완섭 환경장관 집무실에 놓인 책

입력 2025-02-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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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장관, 기자간담회 전 집무실 개방…'역대 최초'
'정치·경제제도가 빈부 좌우'…"정치상황과 무관"
저자 노벨상 수상 후 구매…국장 이상 16명에 배포

▲25일 김완섭 환경부 장관 집무실 책상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데미안' 등의 책이 놓여 있다. 책상 오른 편에는 '매직 컨베이어 벨트', '네이처 포지티브', '기후블랙홀' 등 공급망·기후 관련 서적이 있다. (정호영 기자)
▲25일 김완섭 환경부 장관 집무실 책상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데미안' 등의 책이 놓여 있다. 책상 오른 편에는 '매직 컨베이어 벨트', '네이처 포지티브', '기후블랙홀' 등 공급망·기후 관련 서적이 있다. (정호영 기자)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앞두고 '깜짝 공개'한 집무실 내 책상 한복판에 놓인 한 권의 책이 기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 제목은 각국의 정치·경제제도가 어떻게 일국의 성패를 결정하는지 분석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최근 정국에 대한 고민을 에둘러 나타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27일 환경부에 따르면 김 장관은 25일 오전 10시 30분 예정된 기자간담회를 30여 분 앞두고 유승광 대변인에게 장관 집무실을 기자들이 편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개방하라고 지시했다. 언론에 사전 공지되지 않은 내용이다. 환경부 장관이 언론에 집무실을 공개한 것은 역대 처음으로 파악된다는 것이 환경부 대변인실의 설명이다.

통상 1시간가량 수십여 개의 현안 질문과 답변을 연속해서 주고받아야 하는 간담회를 앞둔 기관장이 먼저 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실제 이날 간담회는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100분 가까이 진행됐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환경부)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환경부)

간담회 장소인 장관 접견실과 종합상황실에서 환경부 실·국장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기자들은 의외의 소식을 듣고 김 장관이 있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기자들의 이목을 끈 것은 김 장관 책상에 놓여 있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에스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와 제임스A.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펴냈다. 자유민주주의와 사유재산, 공정한 경쟁 등이 보장된 '포용적 제도'를 가진 국가는 번영하지만 소수 엘리트층에 부와 권력이 집중된 '착취적 제도'하에서는 국가가 쇠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한 나라의 빈부 결정에 경제제도가 핵심 역할을 하지만 그 나라가 어떤 경제제도를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와 정치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책이지만 여야 간 정쟁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근 탄핵·계엄 정국까지 맞물린 만큼 일부 기자들은 김 장관에게 "뭔가 의도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김 장관은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이지만 작년 22대 총선에서 고향인 강원 원주을에 출마하는 등 잠시나마 정치인의 길도 걸었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강원지사 출마설도 거론된다.

이에 김 장관은 미소를 지으며 "책에 계엄 때문에 나라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없다"며 이집트의 사례를 관심 있게 봤다고 했다. 저자는 이집트가 번영하지 못한 근본적 이유로 '정치'를 지목하며 "이들이 당면한 온갖 경제적 걸림돌은 이집트의 정치권력을 소수 엘리트층이 독점하고 제멋대로 행사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이 책 왼편에는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거쳐 완전한 자아에 이르기까지 고뇌를 그린 헤르만 헤세의 고전 '데미안'도 놓여 있었다. 때문에 부처 내에서는 김 장관이 최근 정치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두 권의 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환경부 관계자는 "책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정치를 보며 약간 상심하신 것은 맞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김 장관은 통화에서 "그 책(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은 작년 10월쯤 샀는데, 같은 조건인데도 국가 시스템의 문제로 어떤 나라는 잘 성장하고 어떤 나라는 잘 안 될까 하는 내용"이라며 "공무원으로서 정부에 있으니 역사적으로 국가의 흥망성쇠에 관심이 있어 본 것이지 최근 그런(정치)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장관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계엄 선포 전인 지난해 10월 이병화 차관을 비롯한 국장급 이상 간부 16명에게 나눠준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책 저자들이 노벨상을 받아 세간의 화제가 된 시점이다.

두 권의 책 외에 김 장관의 책상 한쪽에는 글로벌 공급망 분야 석학인 요시 셰피 MIT 교수가 펴낸 '매직 컨베이어 벨트', 오일영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 등이 쓴 '네이처 포지티브', 박상욱 JTBC 기자의 '기후블랙홀' 등 공급망·기후위기 관련 서적도 있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전국 환경 데이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정호영 기자)
▲김완섭 환경부 장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전국 환경 데이터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정호영 기자)

한편 초미세먼지·오존·수질·조류·강수량·야생동물질병·생활폐기물 등 전국 환경 현황을 집무실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도 다수 기자가 관심을 보였다.

55인치 모니터 6개를 조립한 이 스크린에는 전국 유역(지방)환경청과 한강홍수통제소, 한국환경공단, 국립생태원, 국립공원공단 등 환경부 소속·산하기관 데이터가 연결돼 있다. 실시간으로 환경 변화를 인지할 수 있고 화상 회의도 가능하다. 폐기물 처리 등 전국 환경 민원 발생 건수도 확인할 수 있다. 한정애 전 장관 시절인 2021년 설치돼 김 장관이 요긴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김 장관은 "(환경과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데이터가 들어온다"며 "종종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의 한 국장은 "직원들은 장관이 언제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업무를 할 때 더욱 긴장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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