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동차 부품의 대미 수출이 지난해 82억2200만 달러(약 11조8000억 원)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를 대표하는 현대차·기아도 지난해 10월부터 5개월 연속 월별 미국 판매 대수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다. 2월엔 전년 동기 대비 5.5% 늘어난 13만881대를 판매했다고 한다. 완성차도, 부품도 호조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먹구름도 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달 2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을 대폭 늘려서 대처할 방침이다. 부품 업계는 덩달아 미국 진출 등의 활로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근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부품사들은 대기업과 다르다. 해외 진출 ·다변화 능력이 없기 쉽고, 있어도 탁월할 리 없다. 관세 태풍이 거세게 분다고 미국 진출을 타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업 존망을 건 위험한 도박이 되게 마련이다. 국내 공장이 축소 운영된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미국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사업장 철수설도 또다시 번지고 있다. 이 또한 부품 업계에 심각한 우환거리다. 만에 하나, GM 한국사업장이 철수할 경우 강진급 피해를 낳을 공산이 크다. GM한국사업장은 미국 수출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 자동차는 41만8782대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 판매량(2만4824대)의 16배가 넘는다. 트럼프의 관세 태풍이 몰아치면 추가비용 부담도 커진다. 비상용 대안들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철수설이 고개를 드는 이유다. 한국지엠의 1차 협력사는 276곳이다. 2·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약 3000곳에 달한다. 당국과 업계는 긴장의 끈을 조여야 한다.
자동차 산업만 쳐다볼 국면도 아니다. 미국 정부는 12일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 국내 차 부품 업체들이 주로 생산하는 각종 금속류 부품도 대부분 대상 품목이다. 차량용 에어컨부터 기타 모터(전기차 모터 등)의 부품, 볼트와 너트까지 사정권에 들어갔다. 차 부품 중에선 기타 범퍼, 범퍼 부품, 압연기, 서스펜션 시스템 기타 부품, 파워트레인 기타 부품 등 5개 품목이 포함됐다. 이들 5개 품목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23억 달러(약 3조3000억 원)로 전체 대미 수출액의 약 2% 정도다.
차 부품 업체들은 ‘관세전쟁’ 정보 접근부터 쉽지 않다. 자본도 인력도 부족한 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원청 따라’ 강남 가는 결정을 하게 되기 쉽다. 그러잖아도 치솟는 비용과 규제 부담, 강성 노조 등에 지쳐 한국을 떠나는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관세 폭탄까지 더해지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다. 탈한국 현상에 대처하려면 다른 묘방이 있을 리 없다. 국내에 남아 생산·수출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올 정책을 펴야 한다. 사업 다각화 등을 위한 연구개발(R&D), 인력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춘 유인책도 절실하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부품 업체들이 어찌해야 기꺼이 국내 생태계를 지키게 될지 국가적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