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칼럼] 포퓰리즘에 경도된 ‘상법개정의 정치화’ 막아야

입력 2025-03-0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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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모든 주주이익 동시보호는 불가능
이사충실의무 확대 법적근거 없어
규제혁파 급한데 기업발목 잡기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간 추가적 협의가 필요하다’며 상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거부한 지 하루 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 개정안은 민생경제법안이기에 3월 임시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민주당의 상법개정 관련 전략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하는 소득이 일정 금액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다.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에 대해 전형적 ‘부자감세’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태도를 바꿔 작년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금투세를 폐지했다. ‘금투세 폐지를 주고 상법개정을 받겠다’는 ‘위험한 정책 맞교환’을 시도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무는 순간, 미끼와 ‘자기 목숨’을 바꾸는 것이다. 미끼 상품을 물은 소비자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 신세다. 금투세 폐지는 미끼 상품에 비견될 수 있다. 금투세와 상법개정은 층위가 다른 ‘별개의 의제’이다. 따라서 맞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당의 의중은, “조그만 ‘세모’를 주고 전혀 속성이 다른 큰 ‘네모’를 얻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총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민주당 개정안에는 ‘경제민주화 망령’이 드리워져 있다. “기업의 사업구조 개편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주주를 지배주주와 소액주주로 갈라치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맞다면 논리적으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넘어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까지 보호해야 한다. 그만큼 상법개정 논의는 포퓰리즘에 경도되어 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은 인식오류의 결과이다. ‘소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익’이 별개일 수 없다. 그리고 공정거래법, 상법, 자본시장법 등의 촘촘한 규제로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탈할 여지는 없다. 그렇다면 소수주주가 지배주주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는 ‘1주 1의결권’의 주주평등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는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물적분할’이 그 범주에 속한다. 그러면 부족하지 않게 방어수단을 설계하면 된다. 2022년에 제도화된 ‘주식매수청구권’과 물적분할과 관련된 ‘상장심사·공시 강화’ 등이 안전장치이다. 개연적 피해 방지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해 상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치명적 정책 과용이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는 격이다.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까지 확대되면 대표소송이나 업무상배임죄 처벌요구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회사 성장을 위한 구조조정이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소수주주가 이사들이 내린 의사결정이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이었다고 소송(訴訟)을 제기하면 이를 피할 수 없다. 이사는 법정에서 모든 의사결정에 대해 “소수주주를 포함한 일반주주에의 영향을 검토했고 보완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사의 과다한 입증책임 부담은 그 자체가 희소한 경영자원의 낭비이다.

기업에 투자하는 주체는 ‘장기투자자, 단기투자자,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 국내외 행동주의펀드 및 경영권 공격세력, 일반투자자’ 등 다양하다. 각각 다른 동기와 이유로 주식을 보유하는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동시에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주주의 이익을 비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상법개정안 대로라면 투기자본 등 기업사냥꾼의 이익도 보호해야 한다.

현행 상법에서의 ‘이사 충실의무 원천’은 민법의 위임규정과 이를 준용한 상법 규정에 따른 회사와 이사 간에 맺은 계약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계약관계 당사자인 회사로 한정돼야 논리에 맞다. 상법상 이사는 회사의 대리인으로 주주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사의 주주로의 충실의무 확대는 법적 근거가 없는, 법치에 반한 것이다.

한국 증시는 박스권에 갇혀있다. 민주당 상법개정 논의는 ‘투자결정과 신산업 진출’ 주체인 기업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과할 게 아니라, 명문화된 ‘경영판단원칙’을 허용해 이현령비현령의 배임죄 적용을 막아줘야 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정책들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기업 규제들을 혁파해 성장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법 리스크를 방조해서는 안된다. ‘상법 개정의 정치화’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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