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연금개혁, 무엇을 물려줄까의 문제

입력 2025-03-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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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정책전문기자ㆍ정책학 박사

이 글은 칼럼이 아니다. 20년 뒤 경제활동을 시작할 딸의 대변인으로서 논평이다. 연금개혁 논의에 부쳐 정치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소득대체율 인상 논의를 중단하라.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해도 적립금 소진 시기는 고작 7~8년 미뤄진다. 소득대체율 인상 비용은 적립금이 소진된 뒤 청구된다. 보건복지부의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따르면, 소득대체율 5%포인트(p) 인상은 적립금 소진 이후 부과방식 비용률을 3.7%p 높인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연금급여 지출을 당해 보험료 수입으로 조달하려면 필요한 보험료율이다. 현재 보험료율은 적립금 소진 시점에만 영향을 미칠 뿐, 부과방식 비용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간단히 설명하면, 소득대체율 40% 동결 시 70년 뒤 가입자는 소득의 29.7%를 보험료로 내야 하나, 소득대체율을 45%로 올리면 33.3%, 50%로 올리면 37.0%를 내야 한다. 이는 70년 뒤 가정으로, 노인 인구(65세 이상)가 정점을 지나는 2050년대엔 더 높다.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면서 적립금을 항구적으로 유지하려면 보험료율을 소득대체율을 44%(50%)에 상응하는 21.7%(24.6%)로 인상하고,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등 폐지로 매년 정부 예산총액의 20% 이상을 적립금에 투입해 그간 수지 불균형으로 누적된 미적립부채를 정리해야 한다. 이 정도 각오가 없다면 소득대체율 인상은 운운하지 말자.

둘째, 자동조정장치 도입 근거를 마련하라.

수용성을 고려할 때 보험료율을 단기적으로 15% 이상으로 올리기 어렵다. 결국, 국민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면 수입구조뿐 아니라 지출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

지출구조 개혁방식으로는 소득대체율 인하,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있다. 소득대체율 인하는 신규 수급자들의 급여액에만 영향을 미친다. 가입 기간 평균 소득대체율이 50%를 넘는데도 소득의 9%만 보험료로 낸 2000년 이전 가입자들의 급여액을 건드리지 못한다.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려면 모든 수급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해야 한다.

다만, 현시점에서 구체적인 자동조정장치 모형을 정하긴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곳 이상이 운영한다고는 하나 국가마다 재정 상황이 다르고, 이에 따라 운영하는 모형도 상이해서다. 각 모형의 장단점을 검토해 한국 상황에 맞는 모형을 개발하려면 오랜 기간이 걸린다. 당장 급한 건 ‘국민연금법’에 자동조정장치 도입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20년간 연금개혁을 방해해온 ‘무늬만’ 전문가들을 배제하라.

현재 연금개혁 논의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참여정부가 본격적으로 연금개혁을 추진한 2003년 이후 양대 노동조합총연맹(노총) 등 이익단체의 이해관계를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끊임없이 보험료율 인상에 반대하면서 소득대체율 인상만 요구했다. 2055년으로 예상되는 적립금 소진의 가장 큰 책임자다. 그런데도 이들은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등이 구성될 때마다 지분을 할당받는다. 위원회 안에서는 전문성이 아닌 진영논리에 근거해 토론을 방해하고 논의장을 전쟁터로 만든다. 논의구조도 정리가 필요하다.

덧붙여 어린 딸을 키우면서 늘 ‘딸에게 무엇을 물려줄까’ 고민한다. 안타깝게도 자산은 물려줄 것이 없다. 그래서 빚만큼은 물려주지 말자고 다짐했다. 고작 보험료 덜 내고 연금 좀 더 받겠다고 딸에게 보험료 폭탄과 내 또래를 부양할 부담을 떠넘기고 싶지 않다.

만약 연금개혁이 보험료율을 ‘찔끔’ 올리는 대가로 자동조정장치 도입 없이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나는 미래에 성인이 된 딸에게 이렇게 제안할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연금 보험료 폭탄을 맞으니,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를 하는 게 어떻겠니. 자영업을 하겠다면 창업비용은 아빠가 지원해 주마. 그래도 노후 준비는 필요하니, 아빠가 개인연금을 하나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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