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한 번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항상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고가 있다고 한다.
이 법칙은 산업현장의 재해 발생과 관련된 통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이다. ‘1:29:300 법칙’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현재는 산업재해뿐 아니라 대부분 참사가 예방할 수 있는 원인을 파악, 수정하지 못했거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의미로 폭넓게 사용된다.
통계청 1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작년 11월 이후 2개월 만에 생산·소비·투자 동반 감소했다.
1월 생산은 2.7%, 소비 0.6% 감소했으며 설비투자는 14.2%나 줄었다. 경기는 작년 11월부터 3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고, 선행지표도 2개월 연속 하락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수출 호조세를 주도했던 반도체마저 최근 생산 증가세가 둔화하는 흐름이다.
개별 기업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4일 중견기업연합회가 발표한 ‘2025년 중견기업 수출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견기업 10곳 중 4곳은 상반기 수출 실적이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캐나다, 멕시코에 대한 25% 관세 부과와 중국 관세도 발효되는 등 국내뿐 아니라 국제 정세도 만만치 않다.
국제 경제 여건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는 탄핵을 두고 양측으로 갈라져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더 심각한 점은 상반기, 혹은 연말까지도 이런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단기적 경제 상황에 대한 대처뿐 아니라 시대 흐름에 맞는 외교나 미래에 대한 투자도 방향성이 없는 것 같다. 위기가 닥치면 이전처럼 극복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굳이 하인리히의 법칙을 대입하지 않더라도, 역사를 되새겨 볼 때 항상 블록버스터급 위기는 그 ‘징후’를 외면할 때 발생했다.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거나, 이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기 때문에 일어났던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나고 보면 모든 징후가 더 확실했다.
문제는 모든 대내외 상황은 위기를 가리키고 있는데, 정부가 내놓는 정책이나 대응에서는 위기는커녕 한가함마저 느껴진다는 점이다. 위기라고 말은 많지만, 위기의식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막연한 ‘희망 회로’ 앞에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설마’까지 붙은 느낌이다.
물론 대행 체제하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책임 있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힘들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최근 만났던 공무원이나 이들을 만난 기업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 시스템은 현재 거의 멈춰 있는 느낌이다. 정도가 심하다는 말이다.
대학 입시를 기준으로 볼 때 고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의 시간은 분명 다르다. 지금 우리는 수능을 1주일 앞둔 고등학교 3학년의 시간을 살고 있다.
이 또한 순탄하게 지나가리라는 억지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 위기가 오지 않은 것은 위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대비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에게는 300번의 징후와 29번째 경고가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