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가드 넘어지고 정승원 발목 돌아갔다…논두렁 잔디, 진짜 문제는 [이슈크래커]

입력 2025-03-0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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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3라운드. 잔디에 걸려 넘어진 린가드 옆에서 정승원이 잔디를 심어 넣고 있다. (출처=SBS 보도화면 캡처)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3라운드. 잔디에 걸려 넘어진 린가드 옆에서 정승원이 잔디를 심어 넣고 있다. (출처=SBS 보도화면 캡처)

때 이른 모내기가 펼쳐졌습니다. 다름 아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그라운드 상태를 확인한 축구 팬들은 이마를 짚었습니다. 선수들의 발이 닿기만 하면 잔디가 푹푹 파이면서 심상찮은 모습을 보인 건데요. 날아간 잔디 한 덩이를 선수가 직접 제자리에 심어주는(?) 장면까지 포착되면서 황당함을 자아냈죠.

잔디 상태는 경기력과 직결됩니다. 이날 숱한 선수들이 잔디에 걸려 넘어지거나 헛발을 차고, 발목이 돌아가는 등 부상 위험에 직면하는 광경이 펼쳐지면서 우려를 자아냈는데요. 묵묵히 경기하던 선수들도 쓴소리를 내뱉은, 그야말로 최악의 잔디 상태였습니다.

축구 팬들은 물론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 문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이 축구 경기뿐 아니라 문화예술 행사에도 경기장을 대관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에 잔디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한 축구 선수들, 그리고 축구 팬들의 불만은 쌓이고 있었고요. 돌연 욕받이(?)가 된 아이돌 팬덤의 억울함도 누적되는 중이었죠.

그러다 이번 경기로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수들이 직접 열악한 잔디 상태를 꼬집는가 하면 감독들도 잇따라 '전술 운용이 불가능한 잔디 상태'라는 취지로 아쉬움을 표했는데요.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A매치도 개최하지 못하는 곳을 한국 축구의 심장이라고 부를 수 있냐"는 날 선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하이브리드 잔디.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하이브리드 잔디.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FC서울 vs 김천 상무 경기 어땠나 보니…부상 위험 '아찔'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하나은행 K리그1 2025 3라운드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이날 경기는 시즌 초반 절정에 오른 폼을 자랑하는 서울 린가드, 김천 이동경의 양보 없는 맞대결이 예고된 만큼 화제를 빚었는데요.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체감온도가 영하 3도까지 떨어진 추위도 축구 팬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습니다. 경기장엔 2만5000명에 달하는 관중이 모였죠.

그러나 양 팀은 득점 없이 0-0으로 경기를 마무리했습니다. 공을 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으나 오히려 지루한 양상을 띠었는데요. 특히 양 팀은 전반전 3개(서울 2개·김천 1개)의 슈팅을 시도했지만, 모두 유효슈팅은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후반이 시작되면서 서울은 기성용, 문선민, 루카스를 동시에 투입하며 공격력을 강화하려 했는데요. 기성용은 후반 6분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을 했으나 수비벽에 막혀 골대를 살짝 벗어났습니다.

후반 15분에는 문선민이 수비수 2명을 따돌리고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파고든 뒤 때린 오른발 슈팅이 골대를 벗어났고요. 후반 21분에는 골지역 왼쪽으로 침투한 최준의 슈팅이 달려 나온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죠. 이 슈팅이 이날 경기의 첫 번째 유효 슈팅이었습니다. 후반 36분 린가드의 슈팅이 이날 경기 마지막 유효슈팅이었는데요. 이날 유효슈팅은 서울에서 나온 단 2개였습니다.

좀처럼 풀리지 않은 이날 경기엔 추운 날씨도 물론 영향을 줬을 겁니다. 린가드와 이동경의 패스를 마무리할 공격수가 없었다는 것도 아쉬웠는데요. 무엇보다 큰 관심을 받는 건 그라운드의 잔디였습니다.

이날 중계 화면에서도 고르지 못한 잔디 상태가 눈에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선수들이 공을 찰 때마다 잔디가 푹푹 꺼지고, 허공에 흙이 날아다니는 광경이 펼쳐졌죠. 심지어 밟기만 해도 잔디와 흙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가 땅이 파이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엉망인 잔디 상태는 선수들을 부상 위기로 몰고 갔습니다. 린가드는 전반 27분 상대 진영에서 방향을 틀다가 넘어지면서 발목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상대 태클이 아닌 들뜬 잔디에 발이 걸려 넘어진 황당한 장면이었죠. 다행히 린가드는 치료를 받고 돌아와 경기에 임했습니다.

린가드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전반 44분엔 이동경이 아웃프런트 패스를 시도하다 잔디로 인한 불규칙 바운드로 헛발질했습니다. 기성용이 패스 후 땅을 쳐다보면서 아쉬움을 표하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잔디 곳곳이 패여 공이 갑자기 튀어 오르거나 속도가 제멋대로 바뀐 탓입니다. 경기 후 서울 미드필더 정승원은 "양쪽 발목이 돌아갔다.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잔디 상황을 생각하고 뛰어야 한다는 자체가 아쉽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가수 임영웅의 단독 콘서트 현장. (사진제공=물고기뮤직)
▲지난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가수 임영웅의 단독 콘서트 현장. (사진제공=물고기뮤직)

K잔디, 문제 하루이틀 아냐…정말 '콘서트' 때문일까?

올해 K리그는 역대 가장 이른 시기 개막했습니다. 6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동아시안컵 등 여름 일정에 대비, 예년보다 2~3주 정도 이르게 개막했죠.

안 그래도 열악하기로 소문난 'K잔디'의 상태는 더욱 악화했습니다. 잔디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추운 날씨에 그라운드가 얼어붙으면서 '얼음 잔디'라는 별명도 새롭게(?) 얻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잔디 상태가 도마 위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1차전 팔레스타인전이 열렸습니다. 경기 이후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잔디 상태에 대해 작심 발언을 냈는데요. 오만 원정을 앞뒀던 상황에서 손흥민은 "한 가지 좋은 점은 원정 경기장의 잔디 컨디션이 좋다는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안타깝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우리에 기술적인 선수들이 많은데도 공을 컨트롤하는 데 어려웠다. 드리블하는 데도 어려운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 부분들이 홈 경기 만큼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짚었습니다.

같은 달 서울은 수원FC와 하나은행 K리그1 2024 32라운드 홈 경기를 치렀는데요. 어김없이 잔디 언급이 나왔습니다. 린가드는 홈 경기장의 잔디 상태에 한숨을 내쉬었는데요. 당시 그는 "개인적으로는 (잔디 상태가) 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훈련장 상태도 굉장히 안 좋고 경기장 상태도 굉장히 좋지 않다"며 "프리미어리그와의 비교를 말씀하셨는데,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내가 볼을 이렇게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볼이 잘 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음 플레이를 생각하기 전에 볼부터 잡아야 한다는 생각부터 할 수밖에 없는 (잔디) 컨디션이라 좋은 퀄리티가 나올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이런 환경이라 우리 팀이 진다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면서도 "다만 환경이 조금만 좋다면 우리는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죠.

급기야 같은 해 10월 열릴 예정이었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4차전 이라크전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용인 미르스타디움으로 장소가 급하게 바뀌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에 일부 아이돌 그룹과 가수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문화행사 대관에도 이용되는 만큼, 대형 무대와 스탠딩석을 경기장에 설치하면서 잔디를 망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죠. 실로 아이유 콘서트를 앞두고선 한 축구 팬이 잔디 관리를 위해 콘서트를 취소해달라는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넣은 바 있습니다.

논란이 확산하자 서울시설공단은 서울월드컵경기장 문화행사 대관 금지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K팝 콘서트 수요가 지속해서 높아지고, 서울에 관람객 2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공연장이 없다는 점 등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해 그라운드석 판매 제외 조건만 붙이기로 했는데요. 이와 함께 고온다습한 환경에 취약한 경기장 잔디를 위해 7, 8월에는 문화행사 대관을 제한하기로 했죠.

그러나 최근 10년간 이곳에서 열린 문화행사는 10건도 되지 않습니다. 2016년 빅뱅, 2017년 지드래곤, 2023년 잼버리 K팝 콘서트, 지난해 세븐틴과 임영웅, 아이유 등 콘서트를 합쳐 7건 정도인데요. 특히 7~8월 열린 행사는 잼버리 K팝 콘서트 한 건뿐이었습니다. 이에 서울시설공단의 대책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게다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축구 경기와 문화행사로 벌어들인 수익에 비해 잔디 관리엔 소홀하다는 비판도 이어졌는데요. 지난해 문성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이 서울시설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해 축구장을 외부에 빌려주면서 대관비 109억 원 이상을 벌었습니다.

반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구 용역비는 총 200만 원을 지출했다는데요. 이중 해외 사례를 연구한 사례는 0건이었습니다.

또 가수들의 대형 공연이 끝난 지 불과 3~5일 만에 K리그 축구 경기가 열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이유 콘서트가 끝난 지난해 9월 4일로부터 닷새 만에 FC 서울과 수원 FC의 경기가 열렸고요. 5월 1일 세븐틴 콘서트가 종료되고 3일 후인 5월 4일에 서울과 울산 현대의 경기가 진행됐습니다.

▲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경기. 서울 린가드가 슛을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FC서울과 김천 상무의 경기. 서울 린가드가 슛을 실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날씨 영향?…관계자들이 말하는 진짜 문제는

서울월드컵경기장만 잔디에 고초를 겪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비롯해 광주축구전용경기장, 울산문수축구경기장, 광양축구전용구장도 아쉬운 잔디 상태를 보였는데요. 특히 K리그에선 별 문제 없다며 합격 판정을 받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은 아시아축구연맹(AFC)로부터 홈 경기장 사용 불가능 판정을 받으면서 국제 망신까지 당한 바 있습니다.

이상 기후로 인한 극과 극 날씨도 물론 잔디 환경에 영향을 줍니다. 지난해 여름엔 찜통더위가 밤낮으로 길게 이어졌고, 이번 겨울엔 칼바람과 함께 영하권 추위가 그라운드를 얼어붙게 했죠. 그러나 기후조건이 오히려 열악한 일본만 봐도 한국보다 잔디 관리 상태가 훨씬 우수합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른 개막, 추운 날씨보다 더 큰 문제는 전무한 제반 시설이라는 호소가 나옵니다. 김기동 서울 감독은 "잔디 문제는 1라운드 때부터 나왔다. 서울월드컵경기장뿐만 아니라 다른 곳도 리그가 일찍 시작돼 잔디가 얼어있는 곳이 있어 선수들이 다칠 상황이 이어진다"며 "잔디 훼손도 더 빠르다. 서울월드켭경기장 역시 잔디가 뿌리 내리지 못해 너무 패였다. 린가드도 혼자 뛰다 발목을 접질렀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유럽처럼 잔디를 위한 난방 장치가 설치돼 좋은 상태가 유지되면 개막 시점은 아무 상관 없다"며 "위에 계신 분들이 더욱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제반 시설이 잘 완비돼야 한다. 이왕 시작했으니 잔디 관리에 신경을 써서 선수들이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정용 김천 감독 역시 "경기장 환경 등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빠른 템포의 축구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양 팀 모두 쉽지 않았다"며 그라운드 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죠.

이는 프로축구연맹이 도입 검토 중인 추춘제와 관련해서도 우려를 낳습니다. 유럽 5대 리그를 포함해 AFC 챔피언스리그(ACL) 등이 추춘제로 운영되고 있고, 일본 J리그는 2026~2027시즌부터 추춘제 전환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프로축구연맹도 국제 축구 대회와 주요 해외 리그 운영 등을 고려해 추춘제 전환을 검토 중인데요. 문제는 국내 축구장이 비교적 서늘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추춘제를 도입할 만한 인프라가 전혀 구축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전북 현대 이승우는 추춘제 도입과 관련해 "이런 경기장이라면 말이 안 된다"며 "열선을 깔든, 잔디를 바꾸든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지난해 11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개최한 'K리그 그라운드 개선방안 심포지엄'에서도 전문가들은 해외 선진 사례를 분석하며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과 한국형 잔디의 연구 및 개발, 지자체의 적절한 투자, 구단‧지자체‧관리인 등 잔디와 관련한 주체들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추춘제 도입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의견은 갈렸지만, '크게 봤을 때 장점은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었죠.

다만 이번 얼음 잔디 사태까지 눈여겨봤을 때, 부족한 인프라 속 무리한 추춘제 전환은 섣부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단순히 일정을 앞당기기보다, 근본적인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는 물론 관련 주체들의 긴밀한 소통,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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