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구하기 참여 압박도 받는 것으로 알려져
보류된 보조급 지급은 여전히 불투명
“경제·기술 안보 측면서 한국·대만 등 불리”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웨이저자 TSMC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TSMC는 향후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4년간 최소 1000억 달러를 새롭게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신규 투자는 애리조나주에 5개의 제조시설을 건설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이는 수천 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면서 “오늘 발표로 TSMC의 대미국 투자는 모두 1650억 달러가 된다. 이는 미국과 TSMC에 엄청난 일”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은 21세기 경제의 중추”라면서 “우리는 미국 공장에서 미국 기술과 미국 노동력으로 필요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웨이 회장은 TSMC의 대미투자가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시작됐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인공지능(AI)과 스마트폰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고 말했다. TSMC는 2020년 애리조나에 12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투자 규모를 650억 달러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한 이후 “대만이 미국에서 반도체 산업을 빼앗았다”라며 “대만산 반도체에 최소 25%, 최대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TSMC를 압박했다.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현재 고전하는 인텔을 살리기 위해 TSMC에 인텔 생산공장 지분 인수 또는 기술 합작 등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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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원에 대해 비판해 왔다.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수입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면 업체들이 알아서 대미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를 반영하듯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1월 인사청문회에서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약속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투자는 TSMC가 대만에서 제조한 칩에 대한 25% 관세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상무장관도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에 진출하고 관세를 피하고자 거대한 규모로 미국으로 온다”라면서 “그들이 여기 없다면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주도하는 연방 공무원 대규모 감원도 보조금 지급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블룸버그는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담당한 공무원의 약 5분의 2가 직장을 잃을 위기”라고 전했다.
TSMC의 결단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기업의 고민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든 전 정부가 약속했던 반도체 보조금 지급도 늦어지고 있어 이들의 결단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투자로 인한 비용 부담보다 경제 안보적인 측면을 더 우려했다. 반도체 전문가인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가 미국의 국경 안에서 10나노미터(㎚·1㎚=10억 분의 1m)급 2세대 반도체를 만들라는 것 같은데, 이는 경제적인 논리보다는 안보적인 목적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기업이 미국에 법인을 만들면 그곳에서 만들어진 기술은 미국의 기술이 된다. 경제 안보를 넘어 안보 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웨이 회장은 투자 계획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연구개발(R&D) 센터도 애리조나에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장에서 단순 제품 생산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도 그곳에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며 관세를 피한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대만 국적으로 대만 경제와 반도체 전문가인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 교수는 “미국은 반도체의 최대 수요지로, 현지에서 생산하면 (유통 비용 등) 줄어드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우리 기업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 기술 안보 측면에서 불리한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미국 현지 반도체 생산기지에 37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확장과 로직 칩 팹 연구·설계 시설 구축, 오스틴 공장 확장 계획 등이다.
SK하이닉스도 미국 현지에 38억7000만 달러를 투자할 방침이다. 인디애나주 웨스틀라피엣에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건설을 준비 중이며, 2028년 하반기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