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형 칼럼] ‘뺄셈의 정치’ 성찰 시간이 필요하다

입력 2025-03-0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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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ㆍ공법학

극우·극좌 본질은 정치실패의 산물
침묵하는 다수 대변할 세력 안보여
나라와 미래 위해 극한대립 멈춰야

우리는 지금 스트레스 테스트 시즌 2를 지나는 중이다. 사태는 엄중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렸다. 신문, 방송은 온통 탄핵과 내란 이슈로 도배를 하지만 밖에서는 하루가 멀게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우물안 개구리 싸움에 빠진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아우성이 퍼진다. 미국의 트럼프 때문이라지만 단지 트럼프 때문일까? 여야를 막론하고 설마 설마 하다 트럼프 미국을 맞닥뜨렸지만 광풍은 이미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불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6일의 미국 의사당 난입폭동은 그 거대한 토네이도가 스쳐 간 작은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을 뒤흔든 ‘노란조끼들의 반란’이나 미국을 들썩거리게 만든 ‘월가를 점령하라’의 시대는 가고 이제 레드넥(Redneck)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트럼프가 선봉에 서서 푸틴과 네타냐후, 루카셴코, 빌더스, 오르반, 멜로니, 밀레이 등 세계 각국에서 과거의 선임자들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쟁쟁한 인물들이 팔을 휘둘러대고 있다. 독일 총선도 우파의 승리보다 극우의 약진이 더 두드러졌다.

침묵해 온 다수가 기거하는 곳, 중원은 아랑곳없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레드넥의 위세에 혹해 우향우하는 사이 이재명의 민주당은 돌연 중도보수를 표방하며 우클릭을 시도한다. 진정성 논란도 있고 당내에서도 급작스런 노선변화를 둘러싼 갈등이 벌어진다. 사실 그 말바꿈만으로 이제까지 침묵하던 다수를 대변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그 정치적 변침의 실익, 실용주의 전략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유럽의 시각으로 우리나라의 진보란 실은 중도우파 정도로 간주된다. 엄밀히 따지면 진보에 끼지도 못한다.

극우와 극좌는 배다른 형제이다. 역사는 반복됐다. 일제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 절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소련 지원을 받은 좌익이 득세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우든 극좌든 본질은 정치실패의 산물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보수정권이 극우로 치달을 때 저항은 왼쪽으로, 극좌로 옮아갔다. 진보정권의 몸에서 극우의 씨앗이 자랐고 결국 정권을 탈취했다. 종북좌파론과 평화·민족화해론이 각축을 벌였지만, 정작 북한은 또 다른 형태의 극우, 아니 정치스펙트럼의 이단으로 달렸다.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보수 포퓰리즘과 개인우상화에 기반한 독재(autocracy), 그것이다. 국가사회주의를 표방한 나치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나치’ 척결을 내세운 ‘푸티니즘(Putinism)’과 무엇이 다른가. 종북론을 외치면서 자신이 또 하나의 버전을 만드는 게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보수의 지리멸렬만은 막겠다는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박근혜 탄핵의 학습효과일 것이다. 국민의 힘이 결국 극우세력과 악수하고 윤석열 대통령 살리기에 나서는 사이 저 약속의 땅, 중도의 공간에 틈이 벌어졌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매섭게 파고드는 이재명의 기회주의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도 불구하고 탄복감이다. 국민의 힘은 아픈 곳을 찔린 채 딜레마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묵하는 다수는 목이 마르다. 무슨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이들을 대변할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로막는 법제도적 제약, 특히 다수독식의 선거법 탓에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탄핵심판은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필경 대한민국을 요동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찬탄이든 반탄이든 우르르 몰려가 윽박지르고 마구잡이를 하고 들어내는 식으로 얻을 것은 없다. 처참한 파국밖에 더 무엇을 쟁취하고 또 새로 건설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자신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고 여전히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겪는 헌정시스템의 2차 스트레스를 밑동에서 긴장시키는 위협요인이다. 정치시스템이 국민 수요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때 위기가 온다. 탄핵정국의 국면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국정치의 활로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모든 정치세력은 적어도 당장,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국민에게 밝히고 설명할 의무가 있다.

정치세력들은 정치를 이렇게, 혐오와 악마화, 극한격돌로 끌어나가는 것이 과연 나라와 미래를 위한 길인지 성찰해야 한다. 기회주의 모리(謀利) 정치, 파국이 오더라도 오로지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집착으로 후손에 물려줄 수 있는 올바른 나라를 만들 수 있겠는가. 그러려고 정치를 했는지 깊이 되새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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