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선 악재로 봐 주가 지속 하락
대만은 외교적 이득
한국 기업은 잃을 게 더 많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해외 기업에 자국 내 투자 확대를 압박하면서 기술력 유출 우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만 반도체 기업 TSMC가 미국에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이후 주가가 떨어진 것도 기술 유출 가능성과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미국 투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큰 폭 상승해 올해 1월 종가 기준 223달러까지 치솟던 TSMC 주가는 미국 애리조나주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힌 3일(현지시간) 172.97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0월 1일(172.07달러)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가 미국에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기로 발표한 직후부터 주가가 빠지고 있다”면서 “미국에 생산기지를 지으며 관세를 피하는 효과는 봤지만, TSMC에서 만들어지는 첨단기술이 미국으로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TSMC는 팹(생산공장) 중 하나를 R&D센터로 대신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히 생산기지 증설과 다른 문제다. 최첨단 기술이 미국 내에서 탄생하고 사용되는 것이다. 2028년부터는 미국 팹에서 최신 공정인 2나노미터(㎚·10억분의 1m)를 적용한 제품을 생산하고, A16 기술도 사용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단순히 미국 내 생산량을 늘려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을 넘어, 원천 기술까지 국산화하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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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미국 대규모 투자 발표에 따라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도 그 뒤를 따라가지 않겠냐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두 회사는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추가로 투자 규모를 늘리고 생산량을 확대하면 기술·인재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반도체 분야의 학계 전문가는 “TSMC는 차라리 얻는 것이라도 있다. 중국과 대만의 긴장 상황에서 미국에 투자하면 미국이 외교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다”라며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은 미국에 가서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TSMC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다른 입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패키징이 주된 사업인 TSMC는 미국에 대적할 만한 경쟁자가 없다. 반면, D램이 주력 제품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는 마이크론과 겨뤄야 한다. 즉, 현지에서 인재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전문가는 “미국에 팹을 짓고 운영하다 보면 기술 노하우나 수율 관리법 등 각종 정보를 정부 측에 보고하는 상황이 벌어질 텐데, 이 기술이 마이크론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는 불가피한 수순이라고 판단한다. 다만, 기술력과 인재 유출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차원의 아웃리치(대외 접촉)를 강화하고 산업계와 산학연 전반이 머리를 맞대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외교적인 측면이 중요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움직이기 어렵다”며 “바이든 정부에서 주겠다던 보조금을 트럼프 정부는 재협상하겠다고 나서는데, 이같은 신뢰 문제 해결이 선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에 투자 규모 확대를 결정하기 이전에 보조금에 대한 부분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