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재가 돌아온다!"
지난해 세간을 들썩이게 한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흑백요리사'). 수많은 재미 요소 가운데 빠지지 않고 언급된 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안성재 셰프, 두 심사위원이었는데요. 이 중에서 안성재 셰프는 '한국 유일 미쉐린(미슐랭) 3스타 셰프'라는 타이틀로 시청자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시선까지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방송에서 그는 날카로운 미각은 물론 기본을 중시하는 냉철한 태도를 자랑했습니다. 참가자의 요리를 맛있게 먹더라도 자신을 의심하고 맛을 재차 곱씹는가 하면, 백종원 대표와의 의견 차이로 토론을 벌이는, 음식과 심사에 '진심'인 태도를 보여줬죠.
당연히 안성재 셰프의 레스토랑 '모수 서울'에도 지대한 관심이 쏠렸습니다. 그러나 모수 서울은 '흑백요리사' 공개 전부터 기나긴 휴업에 들어간 바 있어 많은 이들을 좌절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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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흑백요리사' 종영으로부터 수개월이 지난 지금, 마침내 모수 서울의 재오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픈 날짜부터 이전한 위치, 가격 등 정보가 베일을 벗었는데요.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 수준의 치열한 예약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우려의 시선도 나옵니다. 파인다이닝의 인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냐는 취지죠.

최근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는 모수 서울의 예약 페이지가 등장했습니다.
현재 예약을 할 순 없지만, 캐치테이블 내 달력이 22일부터 활성화된 것을 봤을 때 이날 재오픈할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위치와 영업일 등 정보도 게재됐죠. 네이버 지도에서도 이 같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뉴 역시 공개돼 관심을 끌었습니다. 점심은 없고 저녁 코스(Dinner Tasting Course)만 42만 원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테이블당 콜키지(주류 반입비)는 20만 원으로, 최대 와인 1병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앞서 안성재 셰프는 지난달 2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수 서울의 채용 공고를 올렸습니다. 그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저희와 함께할 모든 포지션을 찾고 있다"며 이메일을 통해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죠.
안성재 셰프는 201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수 샌프란시스코'를 오픈한 뒤 8개월 만에 미쉐린 가이드 1스타를 받았는데요. 2017년 CJ제일제당의 투자를 받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모수 서울을 열었습니다. 모수 서울은 미쉐린 1스타, 2스타를 차례대로 따낸 뒤 2023년 한국에서 유일하게 3스타를 받은 식당으로 거듭났습니다. 지난해까지 2년 연속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됐죠.
흔히 프랑스어 발음 미슐랭(Michelin)으로 부르는 미쉐린 가이드는 미식 끝판왕으로 불릴 만큼 수준급 레스토랑을 선정하는 안내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이 타이어를 산 고객에게 서비스 차원으로 끼워 넣어준 여행 안내 책자 속 맛집 소개 코너에서 비롯됐는데요. 시간이 흐르며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한 개를 받은 식당은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 두 개는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레스토랑', 세 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곳'으로 통합니다.
단순히 맛이 좋다고 미쉐린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요리 재료부터 완성도,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걸맞은 가치, 언제 방문해도 변치 않는 일관성 등 모든 평가 요소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 3스타 식당에 선정될 기회를 얻는데요. 식당에 몰래 방문한 미쉐린 평가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만 비로소 3스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3스타를 받더라도 이후 기준에 못 미친다면 단호하게 별을 깎기도 하죠.
다만 안성재 셰프는 지난해 초 모수 서울 휴업을 결정했습니다.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다'며 CJ제일제당과의 파트너십을 종료, 본격적으로 새 매장 준비에 돌입한 겁니다. 지난해 6월 오픈이 예상됐으나 일정상 연기됐습니다.
이에 지난해 운영되지 않은 모수 서울은 올해 미쉐린 심사 대상에서 제외돼 '3년 연속 3스타'의 영예는 불발됐죠.

모수 서울의 휴업으로 사실상 국내에 3스타 레스토랑은 비어 있던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달 미쉐린이 발표한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5'에서 새로운 3스타 식당이 탄생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이전까지 별 3개를 받은 식당은 모수 서울과 라연, 지금은 문을 닫은 가온까지 단 3곳뿐이었습니다.
이번에 별 3개를 받은 밍글스는 한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메뉴들을 선보이는 파인다이닝입니다. 강민구 셰프의 섬세한 디테일과 따뜻한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데요. 인테리어에도 한국의 미학을 강조했는데요. 장인들이 만든 식기와 장식이 멋과 맛을 한층 더 끌어올립니다. 요리에도 전통 한식 재료가 사용된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요리 기법을 결합해 독특하고 창의적인 플레이트를 완성하죠. '전복과 배추선' '생선 만두' 등이 대표적입니다.
강민구 셰프는 "저는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 시기 우리나라에 굉장히 많은 경제 발전 등 변화가 있었다"며 "부모님 세대가 만들어준 이런 사회 환경과 셰프들이 조성한 토대 덕분에 덕업일치(취미와 일이 일치한다는 의미)로 요리를 직업으로 삼아 도전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미쉐린 가이드는 밍글스에 대해 "초창기부터 뚜렷한 한국적 색채를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밍글스만의 맛과 멋을 창조해온 강 셰프는 매번 방문 시 한 걸음 더 진화된 요리를 선보인다"며 "밍글스만의 독특한 매력은 전복 배추선과 어만두처럼 경계를 허무는 요리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평가했습니다.
밍글스는 2017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간 당시부터 9년째 이 안내서에 이름을 올려왔습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스타를 받았다가 올해 국내 유일의 3스타 식당이 된, 뚝심 있는 곳인데요. 이번에 3스타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 전에도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에 방문하기 위해선 최소 한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3스타의 이름값은 더욱 대단했죠. 현재 캐치테이블을 확인해보면 예약이 오픈된 모든 날짜, 모든 시간대가 동난 상황입니다.

재오픈을 앞둔 모수 서울, 새로운 3스타 밍글스가 쌍두마차 역할을 하면서 파인다이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키워드 검색량 분석 사이트 블랙키위에 따르면 최근 4일간 '모수 서울'에 대한 검색량은 1만8500건으로 전월 대비 약 893% 급증했습니다. 연관 키워드는 '모수 서울 가격', '모수 서울 재오픈', '모수 서울 위치', '모수 서울 채용' 등으로 나타나면서 새롭게 문을 여는 식당에 대한 관심을 방증했죠. '밍글스' 검색량은 3만9800건으로 전월보다 무려 2502%, '파인다이닝'의 검색량도 5160건으로 전월보다 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파인다이닝의 기세가 이어진다고 장담하긴 섣부릅니다. 미쉐린 스타를 받고도 폐업한 파인다이닝은 많습니다. '낭만 사업'으로도 불리는 게 파인다이닝인데요. 음식의 단가는 높지만 그에 걸맞은 초고급 식재료를 사용해야 하고, 셰프와 종업원 등 인건비와 교육 비용으로 지출하는 금액도 상당합니다. 하루에 방문하는 손님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메뉴 개발에도 힘써야 합니다. 한마디로 남는 게 적은 사업이라는 겁니다. 수많은 파인다이닝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운영되는 이유죠.
실로 최근 KBS2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출연한 미쉐린 1스타 셰프 김희은은 "단가가 높아서 많이 남는다고 생각하지만 마진율이 10%를 넘지 못한다"고 고백해 놀라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기대 심리를 충족하기 위한 스트레스 또한 엄청나다.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익은 포기하기도 한다"고 부연했죠.
강민구 셰프 역시 미쉐린과의 인터뷰에서 고급화된 메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오너 셰프로서 독립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만큼 파인다이닝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며 "수익성과 퀄리티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며 고민했지만, 결국 우리가 걸어온 길이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어 무척 감격스럽다"고 전했죠.
더군다나 '가성비' 키워드의 인기가 치솟는 요즘입니다.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식당을 찾으면서, 한동안 부진했던 뷔페들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랜드이츠가 운영하는 뷔페 '애슐리퀸즈'는 지난해 연 매출 400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전년(2360억 원) 대비 약 70% 성장했는데요. 매장 수 2023년 77곳에서 지난해 12월 기준 110곳으로 43%가량 늘었습니다. 애슐리퀸즈는 평일 점심 기준 1만9900원의 가격으로 다양한 세계 테마 음식을 제공하죠.
CJ푸드빌이 운영하는 샐러드바 레스토랑 빕스도 지난해 기준 신규 점포의 점당 평균 매출이 전년 대비 35% 높게 나타났고요. 전체 매장의 손님 수는 2022년 대비 19% 늘었습니다. 새로 오픈한 일부 지점에서는 오픈런 사태까지 벌어진다고 합니다. 빕스의 평일 점심은 3만9700원대로 애슐리퀸즈보다 높지만 맥주, 와인 등이 무제한이라 평일에 직장인들이 회식 장소로도 애용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고기 등 특정 메뉴를 무한 리필로 즐길 수 있는 매장도 인기가 좋은데요. 명륜진사갈비는 지난해 매출 5947억 원을 거뒀습니다. 전년(5145억 원) 대비 15% 오른 수치죠. 지난해에만 신규 가맹점 70여 곳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로운샤브샤브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3%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이 최근 6개월 이내 외식 경험이 있는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 고급 레스토랑 방문 및 RMR 관련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4.5%가 고급 레스토랑에 방문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해 2022년(44.0%) 대비 10%포인트(p)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러나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빈도가 이전 대비 감소했다고 답한 비율은 2023년 42.8%에서 올해 57.4%로 나타났는데요. 응답자 절반 이상이 고급 레스토랑에 덜 방문하게 됐다는 겁니다. 파인다이닝, 오마카세(맞춤 차림) 등 레스토랑에 방문하는 것이 경험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67.6%)에 공감하면서도, 요즘 고급 레스토랑의 가격대가 지나치게 비싸다(64.7%)고 응답한 이들도 많았습니다.
고물가는 파인다이닝에도 직격타입니다. 바다를 건너오는 고급 식재료의 가격은 지속해서 오르고요.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도 매년 증가하고 있죠. 소비 트렌드가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에서 '요노'(YONO·You Only Need One)로 옮겨간 것도 파인다이닝 업계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험을 통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층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합니다. 단순한 고급화 전략이 아닌 스토리텔링과 브랜드 철학이 중요하다는 거죠. 변화한 소비 트렌드 속에서 파인다이닝의 전략이 어떻게 구사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