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규제②-1]규제라는 거대한 벽...이익집단의 ‘저항’과 부처·의회의 ‘뒷짐’

입력 2025-03-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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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03-05 18: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2년 전, 카이스트랑 협력해서 ‘인공지능(AI) 약사’ 테스트만 했는데도 보건복지부에서 전화 오고 난리가 났어요. 이거까지 한다고 하면 약사회랑 복지부 뒤집힐 거예요.”

원격 제어 기술을 활용한 ‘화상 투약기(의약품 자판기)’ 상용화를 두고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해외로 가야지, 한국에서 AI는 엄두도 못 낸다”며 “한국은 답이 없다”고 했다.

일찌감치 신기술을 개발하고도 이익집단의 거센 반발과 이들의 눈치만 보는 부처·의회 탓에 혁신 스타트업들이 표류하고 있다.

쓰리알코리아는 2년 6개월 연구 끝에 2011년 ‘화상 투약기’를 개발했다. 소비자가 약국 앞에 설치된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화상으로 약사와 연결되고 상담 후 일반의약품이 투출되는 시스템이다. 약국이 문 닫은 야간 시간 운영해 시민 선택권과 편의를 높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한약사회가 반대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복지부는 약국 이외 장소에서 판매할 수 없다는 ‘약사법 50조 1항’ 취지에 어긋난다며 해당 서비스를 불허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검토조차 안 되다가 2020년 자동폐기됐다.

쓰리알코리아는 2019년 규제샌드박스 문을 두드렸다. 실증특례 허가를 받기 위해 사전검토회의까지 통과했으나 심의위원회 안건 상정이 번번이 불발됐다. 박 대표는 “국정감사 때문에 못 올린다, 선거 지나서 처리해 준다고 계속 미뤘다”며 “여기에만 3년 6개월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2011년 개발된 기술이 12년 만인 2023년 3월 겨우 실증특례 허가를 받은 것이다. 2년 연장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결정은 또다시 미뤄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및 약 배송 스타트업 닥터나우도 해당 법 규정에 막혀 해외로 눈을 돌린 사례다. 이슬기 닥터나우 이사는 “법 조항만으로는 일본과 한국이 별 차이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일본은 전면 허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부처가 법 조항을 과도하게 해석하면서 신규 서비스 진입을 막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부처 공무원들이 퇴직 후 이익집단 산하 단체나 기관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익집단과 협력도 해야하는 규제부처가 갈등 만드는 걸 꺼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한이 곧 ‘밥그릇’인 부처의 속성도 영향을 미친다. 장석인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은 “법을 만들고 지켜야 예산 확보에 유리하다”며 “포지티브로 바꾸면 부서가 없어지고 예산도 줄어드니 필사적으로 규제를 놓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환경에서 중복규제를 없애기 위한 부처 간 협의는 당연히 어렵다. 유엔산업개발기구에서 근무 중인 강성호 선임전문관은 “데이터 산업의 진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타부처 업무에 소극적이고 협조하지 않는 칸막이 문화”라며 “이종 데이터 결합이 핵심 가치인 빅데이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조직 문화”라고 지적했다.

규제개혁을 가로막는 최종 문지기는 의회다. 신산업을 발목잡는 규제를 혁파하려면 결국 법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에서 뭉갠 법안이 수두룩하다.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 6건 제출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선거 때 이익단체가 지역구 단위로 움직이면서 후보들에게 개정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라고 압박한다”며 “정부에서 개정 의지가 있었을 때도 의사, 약사 출신 해당 상임위 의원들이 통과를 안 시켰다”고 전했다. 우버, 에어비앤비, 핀테크 등 새로운 서비스가 한국에 발붙이지 못한 배경도 유사하다. 택시조합, 숙박업체, 금융업계 등 이익집단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정부와 정치권이 ‘표밭’인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혁신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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