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샌드박스는 기존 법에 막힌 신산업이 규제를 피해 안전성을 검증받도록 기회를 주는 제도다. 그러나 현실은 혁신 기업을 고사시키는 제도로 전락했다.
우선 실증특례 허가 자체가 넘기 힘든 벽이다. 산업융합촉진법상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를 신청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규제부처의 장이 이를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최성락 한국규제학회 상임이사는 “한국에서 관계부처가 권한을 내려놓은 적은 거의 없다”며 “규제 특례를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들도 “규제샌드박스에 들어가면 그나마 행복한 것”이라며 “애매하다 싶으면 부처는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실증특례 허가를 받으면 또 다른 벽이 기다린다. 규제부처가 온갖 부가 조건을 붙인다. 원격제어 기술을 활용한 ‘화상 투약기(의약품 자판기)’를 개발한 쓰리알코리아는 실증 허가를 받았지만 그마저도 6개월간 10대 이하로 운영해야 했고, 판매 품목도 11개로 제한됐다. 6개월 지나서 판매 품목 확대를 신청했지만, 1년 6개월간 반려되다 무산됐다. 박인술 쓰리알코리아 대표는 “현행법보다 더 까다롭게 적용을 하면서 규제를 최대화한다. 샌드박스 취지가 ‘선허용 후규제’인데도 규제를 덕지덕지 붙여 놓는다”며 “이런 식으로 허가를 내주니깐 사업성 부족으로 규제샌드박스에서 살아남는 스타트업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규제샌드박스를 거쳐 법령 정비를 요청한 건수를 묻자 국무조정실의 규제조정실 관계자는 “샌드박스 운영 부처로부터 법령 개정을 요청한 건수가 많지 않다”고 했다.
2년 연장까지 합쳐 실증특례 4년을 마친다고 바로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온라인으로 폐차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조인스오토는 일정 면적 이상의 폐차장을 소유하지 않으면 폐차 알선을 할 수 없다는 ‘자동차관리법’에 걸려 2019년 4월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시작했다. 한 차례 연장을 거쳐 2023년 4월 종료 시점이 다가왔지만 제도 개선은 없었다. 업체는 2022년 12월 관련 부처에 법령정비를 요청하고 법령 개정 전까지 ‘임시허가’를 받은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법령 개정 없이 사업을 지속하는 건 아무래도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 장석인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은 “정부가 실적 발표를 못하는 건 그만큼 성과가 없다는 의미”라며 “현행 규제샌드박스는 부처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