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대표소송, 주주이익 보호 수단 중 하나…비용 등 포함해 숙의”
“국민연금, 약탈적 펀드 아냐…기업과 상시적으로 적극 소통”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수책위원장은 5일 서울 서대문 충정로 국민연금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본지와 만나 “수책위가 상근위원회가 되면서 권한과 책임이 커진 만큼 기금 수익률을 고려해 콜업을 포함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원 위원장은 2021년에 이어 지난달 24일부터 1년간 두 번째 수책위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이달 중 본격화되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원 위원장은 수책위 콜업 권한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콜업은 국민연금이 투자한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을 수책위가 행사하도록 기금운용본부에 요청하는 것을 뜻한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기본적으로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맡는다. 다만 수책위원 9명 중 3분의 1(3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콜업을 통해 주주권 행사 방안을 수책위가 결정할 수 있다.
최근 사례로는 고려아연이 대표적이다. 수책위는 고려아연 지분 분쟁 관련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해 고려아연 안건을 콜업해 1월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와 이사 숫자 상한 등 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고려아연 지분 4.51%를 보유한 ‘소수 주주’인 동시에 최윤범 회장 측, 영풍·MBK연합 다음으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캐스팅보터’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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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위원장은 “연기금 운용 실무진이 판단하기 까다롭거나 애매한 사안에 대해 기금운용본부 수탁자책임실(수책실)이 수책위에 안건을 넘기기도 하지만, 수책위가 안건을 먼저 가져올 수도 있다”며 “주총 시즌에 콜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산업안전이나 환경·사회·거버넌스(ESG), 경영진 횡령·배임 등 문제와 관련해 사후 수습이나 주가 정상화 노력 등을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원 위원장은 1기 수책위(2020년~2023년) 기간인 2021년 수책위원장으로 재직했을 무렵 주주대표소송을 추진해 국민연금 가입자는 물론 재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주가치 훼손 소지가 있는 기업에 대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다만, 소송으로 기업 평판이 하락해 국민연금의 투자 손실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송 비용 등도 다 연기금으로 충당하다 보니 국민연금 장·단기 수익률 제고라는 점에서 여러 의견이 충돌할 여지가 있다”고 부연했다. 다른 방안으로 “경영진 배임·횡령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면, 그 손실금을 회사에 반환하도록 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짚었다.
원 위원장은 “국민연금은 상법상 소수 주주로 분류되고 소수 주주가 주주권 보호를 위해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하다”며 “기업에 부담 없는 지점부터 수책위가 접근할 수도 있으며 주주명부열람권이나 회계 열람권 등도 이런 수단에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수책위원장으로서 역할을 두고는 일관성을 강조했다. 원 위원장은 “수책위는 어디까지나 합의 기구이기 때문에 위원장이라고 해서 어떤 계획이나 방향성을 밀어붙일 수는 없다”며 “근로자 추천 전문위원이든, 경영자 추천 전문위원이든 누가 위원장이 되더라도 수책위의 활동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관된 기준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기업들이 수책위가 찬성·반대할 만한 안건을 미리 예상해 중점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면서 “일관성이 어그러지면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에도 방해가 돼 수책위가 방향성을 틀지 못하도록 힘쓰는 것이 위원장이 해야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수책위 결정이 기업별로 다르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원 위원장은 “각 기업이 처한 구체적 상황과 연기금의 장·단기 수익성을 함께 고려하다보니 사안별로 일관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면서도 “수책위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모든 의사결정에는 기금의 수익률이라는 대전제가 깔려 있다”고 반박했다.
주총 시즌에 수책위에 수많은 안건이 몰려 심도 있게 검토할 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 기간 안건 양이 많고 평소보다 업무가 벅찬 것은 사실이지만, 안건 수보다 중요한 것은 수책위가 논의하는 기업 수”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 기업당 안건을 1개만 처리하기도 하고, 많게는 20개 안건까지 처리한다”며 “기업당 안건이 여러 개인 경우, 안건 간 내용이 연결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업이나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각 안건을 소홀하게 살펴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에 대해서는 수책위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원 위원장은 “주주권 행사 역시 연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며 “기업들이 주주 이익을 위한 활동에 나서는 것은 긍정적이며 2017년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역할도 중요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업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국민연금도, 수책위도 약탈적 펀드처럼 기업에 개입하는 것이 아닌, 주주로서 기업과 관계를 맺는(engagement) 존재로 인식됐으면 한다”면서 “이런 파트너십을 위해 수책실에서 기업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고 수책위 역시 수책실 등이 기업과 논의한 내용을 기반으로 안건을 처리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원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 증시는 우호 지분율이 높은 축에 속하며, 일부 기업이 우호 지분을 70~80%가량 확보한 사례도 파악된다”며 “10%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이사해임 요구권, 주주제안권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기업들이 우려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책위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의 지분을 가졌거나 결과적으로 캐스팅보트를 쥘 수는 있겠지만, 칼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뽑아들 생각은 없다"면서 “시장에서 생존하고 수익을 내 주주에게 열매를 나누는 것이 기업 활동이라는 점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의 존재를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