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96.9% “올해 경제위기 올 것”
대기업 10곳 중 3곳 자금사정 악화

‘트럼프 관세 폭탄’의 사정권에 들어서기도 전에 국내 산업계 곳곳에서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실질적인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 지수는 5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크게 악화했다. 투자 심리가 급랭하며 설비투자도 급감했다.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과 함께 급변하는 미중 관계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에 1997년 외환위기 수준 이상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잿빛 전망을 내놨다.
6일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발표한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365.14를 기록했다. 2014년 12월(107.76) 대비 3.4배나 증가한 수치로, 10년 전보다 경제 불확실성이 3배 이상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종전 최대치는 한일무역분쟁이 있던 2019년 8월 538.18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정국 등 국내외 정치·경제적 상황이 급변하면서 64개월 만에 최대 수준으로 치솟은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경제정책 불확실성 확대가 기업의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가 10포인트(p) 증가하면 국내 설비투자는 약 6개월 뒤 8.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올 상반기 설비투자가 급감하고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 계속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투자심리는 이미 최악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0인 이상 508개사를 대상으로 기업규제 전망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34.5%는 올해 기업 규제 환경이 전년보다 ‘악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들은 규제 환경 악화 이유로 ‘미 트럼프 행정부의 글로벌 무역규제 강화’(45.7%)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특히 응답 기업의 96.9%는 ‘올해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1997년보다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이 22.8%, ‘외환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74.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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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기에 앞서 움직이는 자금시장 심리도 얼어붙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사정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 10곳 중 3곳(31%)은 작년보다 올해 자금사정이 ‘악화했다’고 답했다. 자금사정이 ‘호전됐다’는 응답(11%)의 3배에 달했다. 기업들은 자금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환율상승(24.3%), 원자재 가격 및 인건비 상승(23%), 높은 차입 금리(17.7%) 등을 꼽았다.
현금은 없는데 필요한 돈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 기업은 36%였다. 원자재·부품 매입(39.7%), 설비투자(21.3%) 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란 관측에서다. 원자재와 설비투자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이슈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라 공급망을 바꾸거나 설비를 미국으로 이전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근 금리 인하에도 극심한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건설, 철강,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자금사정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며 “환율 변동성을 축소해 기업들의 외환 리스크를 완화하고 정책금융·임시투자세액공제 확대 등의 금융·세제지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