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분쟁 새 국면…3월말 정기주총 ‘표대결’

입력 2025-03-0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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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집중투표제’는 효력 유지…최윤범 회장 경영권 방어할 듯
나머지 안건 결의 효력 정지…영풍 의결권 부활
영풍 신설 유한회사에 현물출자…고려아연 순환 출자 고리 끊어
고려아연, 영풍·MBK와 3월 주총서 표대결 계속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각사)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각사)

법원이 영풍·MBK가 낸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이는 부분 인용 결정을 내렸다. 집중투표제 효력이 유지되면서 고려아연은 일단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서 영풍·MBK와 표대결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법원은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고, 결국 임시주총에서 제한된 영풍의 의결권이 살아나게 됐다.

법원 판결 후 영풍·MBK파트너스는 영풍이 보유 중인 고려아연지분 전량을 신설 유한회사에 현물 출자하는 맞대응 카드를 꺼냈다. 고려아연은 영풍이 주주총회 의결도 없이 현물출자를 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행위라며 반발했다.

법원 ‘집중투표제’는 효력 유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0부는 7일 고려아연 임시주총(1월 23일) 이후 영풍 측이 제기한 임시주총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과 임시주총에서 선임된 이사들의 직무집행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에 대해 최종 판결했다.

법원은 1월 고려아연 임시 주총 결의 중 가결된 집중투표제 도입(1-1호)만 효력을 유지했다. 1호 안건인 집중투표제는 국민연금도 찬성했고,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법원이 효력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법원이 집중투표제 효력은 인정하면서 일단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이달 말 주총에서 경영권이 영풍·MBK에 넘어가는 것은 가까스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집중투표제가 다음 주총부터 도입되면서 당장 MBK 측의 고려아연 이사회 과반 장악은 어려울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수에 선출하려는 이사 수를 곱한 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1주를 가진 주주는 5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 총 5표(1주×5명)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영풍 측보다 지분율이 낮은 최 회장 측에 유리한 투표 방식이다. 고려아연 지분은 MBK·영풍 연합이 40.97%, 최 회장 측이 우호 지분을 합해 34.35%다.

영풍 의결권 부활

다만, 장기적으로는 지분이 많은 MBK 연합이 유리해졌다. 법원은 나머지 안건 결의에 대해선 모두 효력을 정지했다. 이에 따라 이사 수 상한 설정(1-2호), 액면분할(1-4호),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1-6호), 배당기준일 변경(1-7호), 분기배당 도입(1-8호) 안건은 모두 효력을 잃게 됐다. 이들 안건이 소액주주 가치보다는 양측의 경영권 분쟁에 직결된 사안인 만큼 주총에서 다시 다투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으로 보인다.

앞서 영풍·MBK는 1월 고려아연 임시 주총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제기했다. 당시 고려아연은 순환출자 구조를 통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한 채 임시 주총을 열고 안건을 통과시켰다.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고려아연 주주들이 주주총회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가 열린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고려아연 주주들이 주주총회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고려아연 임시주총 전날 최 회장은 최씨 일가가 지배하는 영풍정밀 등이 갖고 있던 영풍지분 10.33%를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넘겼다.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졌고 영풍의 의결권 25.42%를 제한했다. ‘두 회사가 10%를 초과해 서로의 지분을 갖고 있을 경우 각 회사가 상대 기업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상법 제369조 3항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지난 임시주총에서 제한됐던 영풍의 의결권(지분율 25.42%)도 살아나게 됐다.

영풍 반격…고려아연 순환 출자 고리 끊어

법원 판결 직후 영풍·MBK파트너스는 영풍이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 전량을 신설 유한회사에 현물 출자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 SMC를 활용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며 상호주 제한 카드를 원천 봉쇄하려는 조치다.

영풍은 보유 중인 고려아연 526만2450주(25.4%)를 신규법인 유한회사 와이피씨에 현물 출자한다고 공시했다.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을 신설 유한회사에 넘기면 ‘고려아연-SMC-영풍-(와이피씨)-고려아연’이 된다. 와이피씨는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문병국(왼쪽)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고려아연 노동조합위원장이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장 앞에서 노조원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문병국(왼쪽)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고려아연 노동조합위원장이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서울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장 앞에서 노조원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법원은 영풍의 의결권 배제가 위법하다고 판단하면서, 그 근거로 SMC가 유한회사인 점만 언급하고 ‘해외 주식회사’일 경우에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최 회장 측이 유한회사 SMC가 보유한 영풍 지분을 해외법인 ‘주식회사’로 넘기면 다시 한번 영풍의 의결권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었던 셈인데, 영풍의 신설 유한회사 현물출자 카드는 이러한 시도를 원천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영풍 관계자는 “이번 신설유한회사 설립은 고려아연의 불법적 행태를 차단하고 기업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하고도 실효적인 조치”라며 “앞으로도 주주가치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지속 가능한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려아연 측은 즉각 반발했다. 주주총회 의결도 없이 현물출자를 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현행법상 중요 자산을 양도하기 위해서는 주총 특별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게 법조계 해석”이라면서 “이사회 결의만으로 이를 감행하면서 영풍 주주들이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법에 따르면 회사가 영업의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의 양도 행위를 하는 것은 주주 3분의 2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특별 결의 사항”이라며 “이를 실행한 영풍 이사회와 경영진은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투데이DB)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영풍과 MBK와의 경영권 분쟁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투데이DB)

3월 주총서 다시 표대결

3월 말 예정된 정기 주총에서 이사회 장악과 수성을 놓고 양측의 치열한 표싸움이 예상된다. 지난 임시주총에서는 이사회 이사 수 19인 상한 설정, 이사 7인 선임 등 안건이 통과됐다. 신임이사 7인은 모두 고려아연 측이 추천한 인사로 채워졌다. 그 결과 고려아연 이사회는 기존 최 회장 측 이사 11명 대 영풍 측 이사 1명의 ‘11대 1’에서 ‘18대 1’ 구조로 재편됐다.

하지만, 법원 결정으로 무효가 되면서 다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를 전제로 정기 주총 표 대결이 이뤄진다면 ‘13대 11’이나 ‘12대 12’ 등 구도로 최 회장 측이 영풍·MBK 측에 비해 다소 앞서거나 동률을 이룰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추후 의결권 과반을 확보한 영풍·MBK 측이 이사 임기 만료 등으로 신임이사 선출 시 유리한 구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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