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내려고 지분 매도ㆍ가업 포기 "이럴 바엔 해외서 사업"[상속의 덫②]

입력 2025-03-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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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03-09 17:23)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최대주주 할증 적용하면, 상속세 세계 1위
높은 상속세에 불안한 기업 운영·승계
NXC 오너, 회사 지분으로 상속세 물납
상속세 낮아지면 시가총액 올라간다

▲상속세 완화가 장기적으로 국민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 (이투데이)
▲상속세 완화가 장기적으로 국민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 (이투데이)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은 지난달 28일 한미사이언스 지분 1.16%(78만8960주)을 킬링턴(라데팡스파트너스)에 넘겼다. 상속세 납부를 위한 것으로 지난해 12월에 이은 추가 매도다. 한미약품은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이 후계자를 지목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계했으며 약 5400억 원의 상속세가 오너 일가에 부과됐다. 가족들은 주식담보대출 등을 통해 상속세를 일부 납부했지만 과도한 액수와 이자 부담에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상속세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창업주의 부인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딸인 임주현 부회장 모녀와 장·차남 임종윤·임종훈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까지 번졌다가 최근 마무리됐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로 높게 메겨졌으나, 현재는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족쇄가 됐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높은 상속세율로 기업 승계가 어렵고 경영권이 흔들리다 보니 외국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눈덩이같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물납하거나 처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탈취에 고스란히 노출되기도 한다.

9일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상속재산이 주식인 경우 ‘최대주주 할증평가’가 적용되면 실제 상속률은 60%에 이른다.

▲상속세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상속세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현실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기업인들은 주식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주식이 팔리게 되고 지분이 감소하게 되면서 경영권을 위협받는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코스피 상장사 A 사 회장이 아들의 승계 방법을 고민했으나, 높은 상속세에 승계를 포기하고 새로운 법인을 차리는 쪽으로 논의를 시작한다고 들었다”며 “국내에서 규모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도 세 번 상속하면 회사가 망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차라리 상속세가 낮거나 없는 해외로 법인을 이전하는 게 낫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게임회사 넥슨이다. 2022년 2월 넥슨 창업자인 고 김정주 회장이 별세했다. 갑작스러운 사망이었고 승계 준비가 잘 안 돼 있던 가족들은 상속세 약 6조 원을 그대로 떠안게 됐다. 이듬해 2월 오너 일가는 이 가운데 약 4조7000억 원 상당의 엔엑스씨(NXC) 지분 85만1968주를 국가에 물납했다. 회사 지분의 약 29.3%에 달한다. 현재 넥슨의 2대 주주는 기획재정부다. 정부는 물납 주식인 NXC 지분 매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금액 자체가 큰 터라 쉽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자본들이 이 지분을 관심 있게 지켜본다는 얘기가 있다”며 “잘 키운 글로벌 게임사가 상속세 이슈로 중국 등 외국계에 먹혀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견·중소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내 1위 가구업체 한샘을 비롯해 락앤락, 쓰리세븐, 유니더스, 농우바이오 등은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경영권을 사모펀드(PEF)에 넘긴 케이스다. 상속세 탓에 잘 나가던 중소·중견 기업이 가업승계를 하지 못해 경쟁력이 약화되고 폐업까지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상속세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상속세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이달 7일 상속세 최고세율을 30%까지 인하해 달라는 내용의 ‘2025년 중견기업계 세제 건의’를 기재부에 제출했다. 중견련은 “2022년 17년 만에 5000만 원 이하 소득세 과세 표준 구간이 일부 조정됐지만 상위 구간은 유지돼 경제 규모 확대, 물가 상승 등 현실 변화가 충실히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많은 근로자가 명목 소득이 늘어도 실질 소득은 오히려 감소하는 현실적인 증세를 겪고 있는 부조리를 시급히 타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세가 국내 증시 시가총액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상속세의 경제효과에 대한 실증분석’을 통해 상속세수가 10% 감소하면 장기적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0.6%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상속세수가 10% 감소하면 국내 증시 시총은 6.4%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역으로 높은 상속세는 기업이 다음 세대로 승계되는 과정의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한경협은 높은 상속세가 자원의 효율적인 이전을 저해하고 국민과 기업 등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데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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