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혁에 모처럼 시동이 걸렸다. 정부는 이번 주중 ‘유산취득세 개편방안’을 공개한다. 여야도 ‘배우자 상속세 폐지’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상속세 공제 한도를 확대하자는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조기 대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선심 경쟁이 주된 동력이고, 최고세율 인하·최대주주 할증 폐지 논의는 겉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1997년 이후 28년간 쳇바퀴만 돌린 상속세 개편 과제에서 서광이 비치는 점은 여간 반갑지 않다.
원내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속 재산 18억 원까지 세금을 면제하자는 개편안을 최근 내놓은 것이 전환점이 됐다. 정부가 기존 유산세가 아니라 각 상속인이 받는 재산에 과세하는 유산취득세 방안을 내놓고 여야가 이에 생산적으로 반응하면 세제 논의는 더 큰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법체계를 바꾸는 대형 과제다. 전면 재설계가 불가피해 난도도 높다. 하지만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이 방향이 대세다. 여당도 같은 주장을 하는 만큼 국가 미래를 우선시하는 합리적 논의를 통해 새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배우자 상속세 폐지’는 이미 순풍에 돛을 단 격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 6일 “함께 재산을 일군 배우자 간의 상속은 세대 간 부의 이전이 아니다”며 당론 추진을 다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이를 받아 “우리도 동의할 테니 이번에 처리하면 좋겠다”고 했다. 만시지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개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으로 배우자에게 상속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금이 아니라 징벌에 가깝다. 공제 한도가 1997년부터 한 번도 바뀌지 않는 동안 국민소득은 4배 늘어났고, 집값은 10배 이상 뛰었다. 잘못 설계된 상속세는 이미 부유층만이 아니라 중산층에 부담을 주는 약탈적 세제로 변질됐다. 세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선심 쓰듯이 공제 한도를 확대하며 생색만 낼 일이 아니다. 국가 경제를 생각한다면 가업 승계를 가로막고, 자산가들을 해외로 떠나게 만드는 문제의 최고세율을 크게 낮춰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세제 개혁이 될 수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최고세율 50%를 40%로 낮추자는 정부·여당 방안에 ‘초부자 감세’라며 반대하고 있다. 공감하기 어렵다. 복지 선진국인 북구의 스웨덴 등이 왜 초당적 합의를 통해 상속세를 폐지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우리나라는 상속세제로 보면 지구촌에 둘도 없는 갈라파고스 섬이다. 넥슨그룹 창업주 김정주 회장 타계로 남은 유족이 막대한 상속세를 감당할 수 없어 넥슨 지주회사(NXC) 주식으로 현물 납세하자, 정부가 NXC의 2대주주가 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국내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최대주주 할증 시엔 60%로 세계 최고다.
황당한 제도는 황당한 적응을 낳는 법이다. 국내엔 상속재산이 늘지 않도록 사업 확장이나 투자를 꺼리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더는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국민을 호도할 일이 아니다. 갈라파고스 규제가 없어져야 나라도 살고 국민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