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칼럼] ‘가족회사 선관위’는 개혁 영순위다

입력 2025-03-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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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자유기업원 이사장

퇴출 걱정없는 데서 정실주의 만연
독립성은 외부 부당간섭 막는 장치
내부비리 잡을 감시와 통제 절실해

“친인척 채용은 전통”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고 처음에는 어느 민간기업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이야기였다. 정부 기관을 마치 기업처럼 여기는 것이 놀랍고, 가족 회사라고 부르는 것에는 황당할 따름이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지난 10년간 291건의 경력직 채용에서 878건의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닌,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부정행위였다. 특히, 직원 자녀를 내정하거나 내부 인사를 시험위원으로 구성해 자녀의 면접 점수를 조작하는 등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선관위는 “우리는 가족 회사다”라거나 “친인척 채용 전통이 있다”라는 이유로 채용 비리 제보나 신고를 무시했다. 감사가 시작되자 관련 자료를 파기하거나 허위 진술을 강요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된 기관으로서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관리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부패와 부정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개인의 능력이나 자질보다는 혈연, 지연, 학연 등 개인적인 관계를 인사나 정책에 활용하는 정실주의의 전형이다. 정실주의는 우리 사회를 갉아먹는 암이다. 반드시 치유해야 할 질병이다.

정실주의는 경쟁과 퇴출 위협이 없는 곳에서 만연한다. 민간기업은 경쟁과 퇴출이라는 시장 압력에 노출돼 있다. 민간기업의 생존은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하면 이윤으로 보상받고 생존과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손실이라는 처벌을 받아 시장에서 퇴출당한다. 이런 퇴출 위협 때문에 민간기업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인맥이 아닌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을 채용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민간기업과는 달리 정부 기관은 경쟁과 퇴출이라는 시장의 압력을 받지 않는다. 경쟁과 퇴출 압력의 부재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 문제를 일으킨다. 정부 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부 기관의 주인은 국민이고, 그것을 관리하는 관료는 국민의 대리인이다. 경쟁과 퇴출 압력을 받지 않는 관료들이 주인인 국민을 위해서 일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도덕적 해이, 즉 주인-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선관위가 저지른 정실주의에 따른 부정과 비리는 주인-대리인 문제의 끝판왕이다.

정부 기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바로 감사와 감독이다. 감사와 감독을 통해 정부 기관의 운영을 투명하게 해 부패와 비리 발생을 방지하고, 기관의 업무와 결정에 대한 책임성을 높여 도덕적 해이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또한 감사와 감독은 정부 운영이 공정하고 올바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이번에 선관위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라고 결정하여 선관위에 면책특권을 부여했다. 물론 헌재의 결정은 선관위의 독립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독립성은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막기 위한 것이지, 내부의 부정과 비리를 눈감아주는 방패막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선관위를 성역으로 남겨둔 헌재의 결정은 심각한 결함이 있으며, 그 존재 이유마저 의심스럽게 만든다.

견제와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다. 선관위가 왜 ‘가족 회사’처럼 운영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지, 왜 대선 때 투표용지가 소쿠리에 담겨 옮겨지고, 심지어 기표가 된 투표용지가 유권자에게 전달되었는지, 왜 북한에 해킹당하고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부 기관의 부정과 부패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면 법과 제도가 무력화되고 국가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선관위의 부정부패와 정실주의는 단순히 한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선관위의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위법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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