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 보상금·美 AMPC로 적자 메워
‘트럼프 리스크’는 변수…수주 경쟁력 확보 주력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늪에 빠진 국내 배터리 업계가 고객사로부터 수령한 보상금과 정부 보조금 등으로 ‘버티기’에 돌입했다.
11일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수익으로 인식한 고객사 보상금은 1조3657억 원이다. 작년 연간 영업이익(5754억 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배터리사들은 고객사인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최소 주문 물량 미달분에 대한 보상금을 받는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량 조절에 나서면서 최소 계약 물량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SDI와 SK온도 정확한 수치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고객사로부터 수천억원대 보상금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SK온이 지난해 3분기 출범 후 첫 흑자를 낸 배경에도 고객사 보상금을 포함한 일회성 이익 2115억 원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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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 캐즘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배터리 3사의 주요 고객사인 포드, 벤츠, 폭스바겐, BMW 등이 몰려 있는 유럽 시장은 수요 부진이 더욱 극심하다. 시장조사업체 EV볼륨스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의 전기차 등록 대수는 전년 대비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를 받는다. AMPC는 북미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셀 1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은 10달러의 세액공제를 지급한다. 현지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도 AMPC 수령 대상이다. 지난해 배터리 3사가 수령한 AMPC는 1조8622억 원에 달한다.
AMPC는 생산량에 비례해 수취 금액이 늘어난다. 올해부터 새로 가동되는 배터리 공장이 늘어나며 AMPC 규모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는 지난해 말부터 스텔란티스 합작 공장 조기 가동을 시작, 미국 내 첫 셀 생산을 준비 중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혼다 합작 및 애리조나 단독 공장을, SK온은 현대차 및 포드 합작 공장을 연내 가동할 계획이다.
삼성증권은 올해 배터리 3사가 받을 수 있는 AMPC가 3조311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전기차 시장 상황에 따라 공장 가동률 조정 등을 고려하면 AMPC 규모는 이보다 더 작아질 수 있다.
트럼프 리스크도 문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를 공식화하며 IRA 손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업계에선 구매 보조금은 축소 또는 폐지될 수 있어도 생산 보조금은 유지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는데,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보조금에 연일 비판적 목소리를 내며 이마저도 불확실해진 상황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보조금 폐지 등이 현지 생산을 장려하는 방향인 줄 알았는데 최근 공개적으로 한국을 겨냥하는 등 보조금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현지 생산 체계를 갖춘 기업들도 안전하진 않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는 캐즘이 내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캐즘 이후를 위한 수주 경쟁력 확보에도 한창이다. 단기적으론 전기차 외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신규 수요처를 발굴하는 한편,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46시리즈(지름 46㎜) 원통형 배터리부터 리튬인산철(LFP), 미드니켈 등 중저가형까지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