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는 필자의 말이 아니라 법원 판결의 일부이다. 이처럼 법원도 업무의 도급, 외주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기업은 많건 적건 간에 업무 일부를 다른 기업에 도급하고 있고, 필요에 따라 도급하는 기업의 사업장에 협력업체가 상주하며 도급받은 업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협력업체가 원청(도급인)의 사업장 내지는 원청이 지배·관리하는 장소에서 작업할 때가 안전보건관리 측면에서는 가장 어렵다. 도급받은 일을 수행하는 협력업체이더라도 어디까지나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주체인 만큼 원청이라 하여 마음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불법파견의 문제도 있다. 반면에 중대재해 10건 중 7건 정도가 원청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발생한다.
원청에는 자신의 근로자가 아니고, 협력업체는 남의 사업장이다 보니 안전보건관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의 규모가 영세하여 안전보건관리 역량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이렇게 안전보건관리에서 협력업체는 사각지대이다.
협력업체의 효과적 안전보건관리 방안에 대한 질문에 답은 사실 정해져 있다. 법령에서 도급인의 의무로 정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뻔한 이 대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 사업장에서 작업할 때 도급인의 의무로 정한 순회점검, 안전보건 협의체, 합동점검, 안전보건교육 실시 확인 등만 실질적으로 이행하여도 반은 성공이다. 나아가 수급인 근로자에 대하여 직접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수급인이 안전보건조치를 취하였는지 실질적으로 점검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
여기서의 키워드는 ‘실질적으로’다. 어떤 사업장에 가보면 순회점검을 실시하였다면서 점검표는 만들어 놓았는데, 점검사항에는 전부 동그라미(양호)로 표시하고 개선사항에는 모두 ‘없음’이 기재돼 있다. 정말 양호한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순회점검은 하나마나다. 실제 산업재해 예방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재해 발생 시 순회점검을 한 것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 이행에 미흡한 점이 있었음에도 원청의 안전관리자가 협력업체 작업구역에 순회점검을 충실히 실시한 경우에 재해 원인이 된 유해·위험 요인은 예견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인정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례를 상기하자.
둘째,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를 최대한 지원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고용노동부 고시 제2024-76호, 2025년 1월 2일 시행)에서는 도급 사업에서 도급인과 수급인이 각각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정하고 있다. 즉, 수급인이 수행하는 작업이더라도 그 작업을 맡긴 도급인도 해당 작업에 관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2023년 5월 펴낸 ‘새로운 위험성평가 안내서’에 따르면,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 도급인과 수급인이 함께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각자의 위험성평가 실시규정에 따라 위험성평가 결과를 관리한다면 각각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즉, 위험성평가가 생소한 협력업체도 원청이 도와서 위험성평가를 함께 실시하면 법령상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협력업체에 위험성평가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위험성평가 결과를 원청이 검토해 유해·위험 요인이 충분히 파악되었는지, 그 유해·위험 요인에 대한 개선대책이 적절히 수립되었는지, 개선대책이 실제로 이행되었는지를 확인·점검해야 한다.
이렇게 협력업체의 위험성평가만 충실히 이루어져도 중대재해 발생의 위험을 또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다시 한번 우리 회사에 위 두 가지가 ‘실질적으로’ 이행되고 있는지 돌이켜보자. 이 뻔한 이야기가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어느 집의 가장과 경영책임자를 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