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잘 아는 ‘반장’ 70여 명이 위기가구 발굴
복지체계 연계부터 ‘심리적 안정감’까지 제공

좁은 골목을 가로지르는 김미수(63) 반장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도 어플리케이션(앱)으로도 찾아가기 힘든 골목을 편하게 지나며 대문, 우편함 등을 매의 눈으로 살펴본다. 분주한 발걸음은 이내 좁은 대문 앞에 멈춰 선다.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주인의 표정이 환해진다. 서울 서대문구가 운영 중인 ‘이웃돌봄반’의 활동 현장이다.
서대문구 ‘이웃돌봄반’은 지역 구석구석 사정에 훤한 반장으로 구성된 동네 인적 안전망이다. 동네 주거취약지역을 정기적으로 순찰하며 도움이 필요한 위기가구를 발굴해 복지서비스로 연계될 수 있도록 돕는다.
동네를 잘 아는 반장들로 구성된 만큼 사회 안전망이 놓치고 있는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데 탁월한 실적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서대문구 이웃돌봄반은 작년 한 해 434건의 위기가구를 발굴해 2262건의 복지 자원 및 서비스를 연계하는 성과를 냈다.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방법도 지역을 잘 알지 못하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 예를 들어 평소보다 우편물이 쌓여있다거나,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는 등 평소와 다른 상황을 마주하면 즉시 해당 가구를 방문해 상황을 점검하는 방식이다. 1인 가구, 고독사 등이 많아지는 추세에서 이처럼 작은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은 ‘이웃돌봄반’만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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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동행 방문한 가구 역시 기존 복지체계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던 1인 가구였다. 노모(54) 씨는 건설 일용직 등으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최근 희귀난치성 질환인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으며 생활고를 겪게 됐다. 이후 인지기능 저하 등이 겹치며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어려워졌고 약한 수준의 저장강박까지 가지고 있던 탓에 거주 환경도 악화됐다.
이에 해당 지역을 순찰하던 이웃돌봄반 김미수 반장은 노 씨 집을 방문해 거주 환경 개선을 돕고 복지체계 편입에 도움을 줬다. 그 결과 노 씨는 지난해 6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최소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발 디딜 틈 없이 잡동사니로 가득했던 집 앞도 처음보다 훨씬 깨끗해졌다.
김 반장은 “평소 복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는데, 주민들이 서로 돕고 돌보는 이웃돌봄반 활동 취지에 공감하게 돼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며 “동네 주민으로서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이웃돌봄반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돌봄반은 단순히 위기가구를 복지체계에 편입하는 것보다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다. 바로 위기가구의 심리적 안식처가 된다는 점이다. 주거취약지역의 위기가구, 고령자 등은 별다른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않아 고립되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이웃돌봄반 활동을 통해 이웃 간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이들을 다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김 반장은 “노 씨의 경우 처음 몇 번 방문했을 때는 별다른 말도 없고 숫기가 없어 보였다”라며 “그러나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 등을 나누며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요새는 동네를 다니다 보면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처럼 마음을 열고 이웃 관계가 형성되는 만큼 수혜 대상자들의 만족도도 높다.
노 씨는 “반장님이 오셔서 정리도 해주시고 말도 걸어주셔서 좋다”며 “계속 집에 방문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어 보였다.
서대문구는 이웃돌봄반 참여자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참여자들의 정식 교육을 받은 복지사 등이 아니므로 교육을 통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서대문구는 이달 초 이웃돌봄반 위촉식과 함께 ‘인적안전망의 역할 및 활동 방법’을 주제로 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했다. 아울러 올해에는 심화 교육과정 운영 및 참여자 포상 등 다양한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해 더욱 적극적인 이웃돌봄반 활동을 유도할 계획이다. 올해 이웃돌봄반 활동 인원은 14개 동 반장 70명이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이웃돌봄반 참여자의 작은 관심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올해도 이웃돌봄반과 함께 위기가구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