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급락세에 '야성적 충동'으로 선그어
전문가 “경기침체 우려보다는 성장둔화 우려”
트럼프 증시 의도적 흔들기라는 분석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다우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08%, S&P500지수는 2.70% 각각 빠졌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4.00% 급락한 1만7468.32에 마감했다. 특히 나스닥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2022년 9월 13일(-5.13%)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1조 달러(약 1460조 원) 넘게 증발했다.
이날 시장을 움직일만한 이렇다 할 재료는 없었지만, 패닉셀의 방아쇠를 잡아당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올해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하는 일은 미국에 부를 다시 가져오는 과정이기 때문에 일정한 ‘과도기적 시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언급은 경기침체를 불사하고서라도 고율의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면서 시장의 공포 심리를 자극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경기침체를 유발할 가능성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을 흔들고 있다”면서 “트럼프의 성장 친화적 입장이 경제와 시장을 활성화할 것이라고 믿었던 투자자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공포는 곳곳에서 표출됐다. 이른바 ‘공포지수’로 불리는 미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전 거래일보다 19.22% 폭등한 27.86을 기록했다. 장중에는 29.56까지 치솟으며 지난해 8월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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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금리도 급락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전장 대비 0.09%포인트(p) 하락한 4.21%를 기록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미 국채금리는 0.12%p 떨어진 3.88%를 나타냈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경기침체 우려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진 영향이다.
여기에 이날 골드만삭스는 관세 충격을 고려해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4%에서 1.7%로 대폭 낮추면서 시장의 우려를 부채질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책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승 및 성장세 ‘둔화’ 위험이 커졌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 자체는 크지 않다고 진단한다. 키 프라이빗뱅크의 조지 마테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우리는 여전히 경기침체라기보다는 ‘성장 공포’로 보고 있다”면서 “이것은 전적으로 (정책이 만든) 인위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증시 급락을 ‘야성적 충동’에 빗대며 의미 부여에 선을 그었다. 백악관 당국자는 이날 증시 급락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단의 질문에 대한 답변 성명에 “주식시장의 야성적인 충동(animal spirits)과 우리가 업계와 업계 리더들로부터 실질적으로 파악하는 것 사이에는 강한 차이가 있다”면서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미칠 영향에 있어 후자가 확실히 전자에 비해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CNBC는 “백악관이 ‘야성적 충동’이란 용어를 사용해 이날 매도세가 비이성적인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이날 현대차와 LG전자, 삼성전자를 비롯한 세계 각국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 투자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취합해 ‘성과’로 홍보하기도 했다.
월가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권 초반 의도적 증시 흔들기라는 분석도 나온다. 임기 초반 증시를 흔든 뒤 책임을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투자은행 스티펄의 브라이언 가드너 수석 정책 담당 전략가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침체가 늦게 발생할수록 현행 정부가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며 “반면 침체가 일찍 발생할수록 유권자들은 전임 행정부를 비난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