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가 시퍼렇게 물들었다. 11일 종가는 2537.60이다. 직전 거래일보다 32.79포인트(1.28%) 하락했다. 장중 한때 2.5%가량 내려 2500선을 위협받기도 했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도 마찬가지로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장중 한때 3만6000선이 깨지며 3만5987까지 떨어졌다. 미국발 ‘R(경기침체)의 공포’가 덮친 탓이다. 한일만이 아니다. 월요일 개장이 상대적으로 빠른 아시아 증시가 아침부터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배후에 있다. 트럼프 관세는 결국 자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등 관세 전쟁을 밀어붙이겠다는 공세적 입장을 늦추지 않는다. 시장 반응은 발작에 가깝다. R의 공포가 그토록 위압적이다.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2.70% 급락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4.00% 폭락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 1만8000선이 무너져 2022년 9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테슬라 주가는 15.4% 폭락했다. 4년 반 만의 하루 최대 낙폭이다.
미국 대형은행들이 앞다퉈 비관적 전망으로 돌아서는 것도 심상찮다. JP모건체이스는 올해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을 종전 30%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4%에서 1.7%로 내렸다. 1월 미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 올랐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파문이 인다. 비트코인은 이날 오전 한때 1억1600만 원까지 밀렸다. 연일 2% 넘게 하락하며 낙폭을 확대했다.
코스피·코스닥만 걱정할 계제가 아니다.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교역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침체를 면치 못하는 한국 경제가 복합 위기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번진다. 국내외 금융기관들도 올해 성장률을 빠르게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해외 투자은행이 제시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6% 수준이다. 전망치 하강 추세로 보면 관련 기관들이 앞으로 내놓을 수치가 더 내려가진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없다.
1450원대 고환율도 문제다. 한미 금리가 이미 역전된 상황에서 원화 약세로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실물경제가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금융이 실물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금융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넓고 튼튼한 우산이 필요한 비상한 시기다.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정교한 정책 조합으로 국가 경제의 활로를 열어야 한다. 기업 발목을 잡는 규제와 비효율을 혁파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급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부를 일구는 우리 기업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정치권부터 역주행을 일삼으니 코스피가 시퍼렇게 물드는 것이다. 주 52시간 특례를 적용하는 반도체특별법에 반대하고,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가 거듭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