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3대 품목비중 60% 불구
국내 규제·中 약진·美 관세 등
대내외 악재에 경쟁력 ‘흔들’
“세제 혜택 등 제도 개선 시급”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축인 제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중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약 두 배다. 특히 제조업은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담당한다. 그 중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상위 13대 품목이 국내 수출에서 60%를 책임진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무너진다면 단순한 산업 위기가 아니라 경제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한국은 제조업의 회복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더 복잡하고 위협적이다.
16일 주요 시장조사기관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세계 시장을 선도하던 반도체, 자동차, 디스플레이, 철강, 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이 점유율을 잃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시장에서 대만의 TSMC 독주가 가속화되며 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작년 4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8.1%로 전 분기 9.1%보다 1%포인트(p) 하락했다. 같은 기간 TSMC 점유율은 67.1%로 2.4%p 상승했다. 이 기간 두 회사의 격차는 55.6%p에서 59%p로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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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은 내수 한계와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제동이 걸렸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조사 결과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생산은 전년 대비 2.7% 감소한 413만대였다. 글로벌 순위는 6위에서 7위로 한 단계 떨어졌다. 국내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도 중국 기업들의 공격까지 더해지며 맥을 못추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이들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6%p 하락한 37.9%였다.
부동의 1위를 이어온 TV시장에서도 한국의 입지는 예전같지 않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 분석 결과 지난해 판매액 기준 글로벌 TV 점유율에서 삼성전자(28.3%)와 LG전자(16.1%)는 1, 2위를 지켰다. 하지만 판매 대수로 따지면 다른 결과가 나온다. TCL, 하이센스, 샤오미 등 중국의 주요 TV 업체의 출하량 기준 합산 점유율은 31.3%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합산 점유율(28.4%)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고전 중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6%로, 애플(23%)에 이어 2위다. 직전 분기(19%)대비 3%p 축소됐다. 지난해 삼성전자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분기 20% △2분기 19% △3분기 19% 등 내림추세다.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시장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은 2023년 61.1%에서 지난해 55.1%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BOE, 차이나스타(CSOT), 티안마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의 점유율은 38.7%에서 44.8%까지 뛰었다. 불과 1년 만에 한국과 중국의 점유율 격차가 22.4%p에서 10.3%p로 줄어든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조업 경쟁력 하락의 원인으로 △국내 각종 규제 △중국의 기술력 향상 △전 세계 공급망 불안 △핵심 인재 부족 등을 꼽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까지 악재가 덮치며 난국을 타개할 만한 방안 찾기가 쉽지 않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제, 노동시장, 산업입지 등 전 분야에 걸쳐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제도의 경쟁력이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아 경쟁국보다 열위"라며 "기업이 대규모 제조업을 효율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제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