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中 공세도 벅찬데…정치권 ‘반기업법’ 발목 [韓 제조업이 무너진다①]

입력 2025-03-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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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03-16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자동차·반도체·배터리·철강 등
韓경제 주력 산업들 총체적 위기
재계 우려에도 상법개정안 통과
노란봉투법·통상임금도 큰 부담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4월 ‘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나?(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FT는 한국 성장모델의 주축이었던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25년 3월. FT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성장엔진이 급속도로 꺼져가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린다.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주름잡았던 국가대표 기업들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 주력 산업들의 글로벌 존재감은 점차 위축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 , 중국의 과학굴기 등으로 글로벌 무역전쟁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과도한 반기업 정책, 노동시장 경직성, 인재 부족 등 여러 장애물이 기업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다. 본지는 대한민국 제조업이 처한 현실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성장엔진’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미중 패권 경쟁 속 세계 공급망 위기, 반기업적 각종 규제와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 등이 맞물린 영향이 크다. 정부가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속 이렇다 할 산업 재편과 혁신, 투자없이 소위 잘나가는 산업만 믿다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안일함과 정치권의 발목잡기로 결국 우리 주력 산업 곳곳에 경고등이 켜졌다. 제조업의 전례없는 위기는 지역 및 자영업의 위축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연결돼 결국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과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제조업 생산지수는 103.7로 전년 동기보다 4.2% 줄었다. 2023년 7월(-6.6%)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문제는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철강 등 우리나라 수출을 책임지는 주력산업 전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것이다.

국내 간판 제조업체인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영업이익과 글로벌 판매량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현대차의 영업이익과 글로벌 판매량이 전년 대비 줄어든 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2020년 이후 4년 만이다. 경기 위축 및 고환율의 영향이 크다. 전기차 시장에선 중국 BYD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현대차와 기아의 점유율은 정체 상태다.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던 배터리 산업 역시 위기에 직면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관세 리스크 등으로 수익성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우리 수출의 1등 품목이었던 반도체 산업도 잿빛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와 함께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 속 샌드위치 신세다. 기술 및 인재 유출, 주52시간제 등 제도적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난국을 타개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선 LCD 산업을 장악한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은 물론 기술력도 끌어올리며 차세대 OLED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중이다.

주요국들이 정부 주도로 핵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며 치고 나가는 사이 국내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와 노동시장 경직성에 주저앉기 일쑤다. 환경·노동·세제 규제가 강화되면서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신기술 개발과 공장 증설 계획은 물거품되거나 표류 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 경쟁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공세를 펼치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은 규제 장벽에 막혀 대응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저출산 및 고령화에 따른 인재 부족과 수요 침체도 제조업 위기의 주된 이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로, 2023년(0.72)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이 출산율이 지속되면 한국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후반 0%대까지 하락할 전망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국내 기업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각종 반기업 법안이 발의되고 있으며 여소야대 정국 속 된 국회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어서다.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로까지 확대된 것은 우리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제조업이 주력인 우리 기업의 경우 중장기적 설비투자를 위한 정상적인 의사결정까지 소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불법파업을 조장할 우려가 큰 이른바 ‘노란 봉투법’이 재발의된 점과 통상임금도 기업에 큰 부담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기업들은 연간 약 6조8000억 원의 추가 인건비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중 무역 갈등 격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중국의 거센 추격 등도 국내 제조업 위기의 단초가 됐다. 특히 트럼프발 리스크가 치명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초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진행된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보다) 네 배나 높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미국 내 생산시설 건립 보조금 지급 근거인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은 폐지하겠다는 의사도 재차 확인했다.

미국의 25% 관세가 현실화된 철강 업계는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번 관세 부과로 국내 철강업계는 1조 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트럼프 정부가 자동차 상호관세 및 품목관세의 관세를 내달 2일 본격 부과할 경우 현대차그룹 국내 생산량은 30만대 감소하고, 한국GM은 전체 생산량 약 80%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상수 한신평 수석애널리스트는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면 직접적으로 수출기업들은 미국시장 내 가격경쟁력 약화에 따른 판매감소를 경험할 수 있다”며 “현지에 이미 생산기반을 보유한 기업들 또한 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시 생산원가 증가에 따른 수익성 저하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대중 경쟁우위 품목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면서 “전기차·드론·배터리·태양광 등 중국이 신산업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가운데 각국에서 자국 우선주의 산업 육성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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