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12일 상속세 과세 체계를 전면 개편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이다. 유족(상속인)들은 각자 물려받는 재산만큼만 세금을 내게 된다. 정부 구상대로 개편되면 1950년 3월 상속세법이 처음 도입된 지 75년 만의 대전환이다.
현행 상속세는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하기 어렵다. 현행 세제가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에 자산 가격은 급등해 가진 것을 다 털어봐야 달랑 집 한 채만 남는 집안도 상속 과정에서 무거운 세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이번 개편안은 낡은 틀을 새롭게 하고 불합리한 내용을 바로잡는 의미가 있다. 지난해 추진했다가 무산된 자녀 공제 확대도 개편안에 담겼다. 다자녀일수록 감세 혜택이 커진다. 이 역시 인구 효과가 기대되는 합당한 접근이다.
상속세 공제 한도는 1997년부터 28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시세 10억 원을 웃도는 서울 아파트 비율이 40%를 돌파했다. 수많은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가 기본 공제(5억 원)와 배우자 공제(5억 원) 한도를 넘어 상속세 부과 대상이 됐다. 중산층 유족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살던 집을 팔아야 한다면 국가의 무분별한 폭력이다. 이번 개편 움직임을 칭찬하고 말 것이 없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정부 개편 방향은 타당하지만 아쉬운 측면도 있다. 특히 최고세율 인하(50%→40%), 최대주주 할증(20%) 폐지를 빠뜨린 허물이 크다. 우리 최고세율은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최악이다.
OECD의 평균 최고세율은 상속세제 개혁포럼이 펴낸 ‘국가의 약탈 상속세’에 따르면 14.5%다. 상속세가 없는 나라도 15개국이나 된다. 직계 가족 상속 시에 세금을 면제하는 4개국을 포함하면 19개국으로 늘어난다. 그들이라고 해서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이나 질시·배척 심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징벌적 세제로 정당한 상속을 가로막으면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큰 손실이 된다는 경험칙과 각성이 있기에 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은 선택을 피하는 것이다.
우리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 현행 세제로는 그 어떤 재력가 집안도 두세 세대만 지나면 거덜이 나게 돼 있다. 자구책을 구하는 것은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90% 이상이 가업 승계의 어려움으로 막대한 조세 부담을 꼽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와 사유재산제의 힘으로 단 두 세대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가 모처럼 상속세를 손보면서 가업 승계를 가로막고 사회적 병폐를 키우는 구조적 질환을 못 본 체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국민의힘은 최근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제액 증액 청사진을 내놓았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방침을 철회하기도 했다. 여야 합의 처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 민주당이 반대하는 최고세율 인하를 제외했을 공산이 크다.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최고세율 인하가 빠진 개편은 반쪽짜리다. 시장경제 건강을 해치는 핵심 과제를 언제까지 묵혀둘 것인지 묻게 된다. 문제의식은 없고 눈치만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