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사교육비가 29조 원을 웃돌아 2007년 조사 이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초·중·고 학생 수는 513만 명으로 1년 사이 8만 명(1.5%) 줄어든 반면 사교육비는 29조2000억 원으로 2조1000억 원(7.7%) 증가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13일 내놓은 2024년 통계는 전국의 약 3000개교 학생 7만4000명을 대상으로 사교육비, 참여율, 참여 시간 등을 조사한 결과다. N수생은 빠진 불완전 통계다. 그런데도 30조 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 연구개발비(28조 원)를 웃도는 규모다. 사교육 열풍이 잠들기는커녕 외려 거세진 것이다. 사교육비 증가 폭은 중학교가 9.5%로 가장 컸다. 참여율과 참여 시간은 각급 학교에서 다 증가했다. 공교육이 망가진 교육 현주소를 거듭 곱씹게 한다.
영유아 시장 실태가 공식 확인된 것도 주목된다. 이번에 처음 진행된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에서 만 5세 아이들 10명 중 8명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월평균 사교육비는 33만2000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흔히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 월평균 비용은 154만5000원이다. 학원가에선 ‘4세 고시·7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초등 의대반’ 이 등장한 지 오래됐다. 이 모두 학부모 등골을 휘게 하는 사회 병리 현상이다.
정부는 교육 현장이 이렇게 돌아가는데도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부 전반기 교육 분야 성과를 발표하면서 늘봄학교 도입, 입시개혁 등 9개 교육개혁 과제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심지어 “(교육개혁이) 현장 곳곳에 뿌리내려 임기 후반기에는 국민이 체감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란 장담도 했다. 낯뜨거운 일이다.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정리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에 따르면 어설픈 정책이나 개입은 전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나 역기능을 내는 법이다. 쥐를 박멸하기 위해 쥐 현상금을 내걸면 공돈에 눈독을 들여 쥐 사육에 나서는 집단 반응이 촉발되는 식이다. 우리 역대 정부는 백년지계를 놓고 쥐 현상금에 못지않은 근시안적 정책 실패를 반복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23년 6월 느닷없이 수능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물수능’ 기대감이 확산하면서 N수생이 확 불어났다. 지난해엔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까지 더해져 N수생이 16만1700명으로 급증했다. 학령인구가 추세적으로 감소하는데도 입시 경쟁이 완화하는 대신 입시 문이 훨씬 더 비좁아진 이유다. 이번 통계에 N수생 비용은 잡히지 않았지만 연속되는 정책 헛발질로 사회적 비용이 급증했다는 것을 모를 사람이 없다.
아이 있는 가정이라면 사교육비는 지출 1순위다. 사교육비 압박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줄여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젊은 세대가 출산·육아를 꺼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5명으로 세계 최악이다. 사교육 문제는 빈부격차·승자독식·저출산이 얽힌 악순환의 핵심 고리다. 결국 공교육 강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국가적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