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의 시선] 정파성 매몰된 레거시 미디어들

입력 2025-03-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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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치 권력 ‘언론 도구화’ 태도 여전
온라인 각광에 기성 언론 생존 위기
탄핵 보도 행태 ‘정당 신문’ 다름없어

플라톤은 대중들에 의해 정치지도자가 선출되는 민주주의에 부정적이었다. 대중의 판단은 이성적일 수 없다는 이유다. ‘선(善)의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rules of philosophies)’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인정치도 주요 계급들이 타락하게 되면 참주정치가 되고, 피지배계급이 참주의 폭정에 대항하면서 극단적 무질서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생산자’ ‘군인’ ‘통치자’ 계급들이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덕목을 갖추고 있을 때 안정적인 철인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산자는 ‘욕망’, 군인은 ‘의지와 용맹함’, 통치자는 ‘이성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각각의 계급들이 그 덕목을 잃게 되면 정치는 타락하고 혼돈에 빠지게 된다는 논리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 그나마 얻은 소득이라면 각 분야 리더들의 민낯을 국민들이 낱낱이 알게 된 것 아닌가 싶다. 그들의 타락한 덕목들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것이다. 권력에 눈이 먼 정치인들과 검찰·사법부 같은 권력기관 인사들에게 지혜나 이성을 기대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장군들의 태도나 발언에서 용맹함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과연 적과 싸울 의지조차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전교 1등들의 몰락’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언론이다. 플라톤이 언론을 언급했을 리 없지만, 그가 했던 말들로 언론은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표현해 독단에 빠지지 않고 참된 진리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라 유추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탄핵정국에서 우리 언론들은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은 고사하고 완전히 정파성에 매몰되어 버린 듯하다. 말이 좋아 정파성이지 특정 정치권력에 자발적으로 충성한 모습이다. 18세기 초 정당이라는 우산 밑에서 연명했던 ‘정당 신문(party paper)’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솔직히 정치적 스탠스를 180도 바꿔 기계적 공정성조차 포기해 버린 이른바 메이저 신문들의 변신은 의외다.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한 침묵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는 아예 그림자 취급해 버렸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정파성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학문적 용어로는 언론이 정치권력 변화에 맞추어 생존하는 ‘정치병행성(political parallelism)’ 때문이다. 이미 공영방송은 정치권력에 충성하고 그 대신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받는 ‘후견 체제’에 매몰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기성 언론들이 정파성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정치권력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언론을 정치적 도구나 선거 전리품으로 보는 정치권 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 특히 완전히 기울어진 언론 지형을 만든 문재인 정권의 추억을 언론사들은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레거시 미디어의 추락이다. 온라인 매체에 미디어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심각한 생존 위기에 몰려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양산업일수록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다.

편파보도로 가장 많이 비난받고 있는 방송은 재허가 심사에 걸려있고, 재정위기에 몰려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하는 방송사도 있다. 어떤 언론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 가장 많은 정부 광고를 수주하기도 했다. 그러니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 정당에 충성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호적이어야만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이처럼 권력에 의존해 생존하는 후진적 언론 구조와 행태들이 지속되는 한 공정 보도를 기대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이 정도 편파성을 드러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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