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누가 가계빚을 늘리나

입력 2025-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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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들이붓고선 불이 커진다고 호들갑이다. 가계부채 이야기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조 원 넘게 늘어난 가계대출로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금융위원회는 물론 한국은행까지 나서 "정책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심상찮은 경고에 나섰다.

그런데 정작 불쏘시개를 던진 것은 정부다. 지난달 급증한 가계대출은 최근 서울시가 단행한 이른바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 후폭풍이 부동산시장은 물론 금융시장에까지 거세게 휘몰아치면서 발생한 결과다.

이를 정부와 금융당국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렇다고 보기에는 과거 비슷한 사례가 너무 많다. 2021년 하반기에도 정부는 대출 규제를 강화하겠다며 가계부채 총량 관리에 나섰지만, 한편으로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대출문턱을 낮추면서 되레 시장의 기대 심리를 자극했다. 당시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등하며 가계대출 증가율은 10%를 넘겼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정부는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나선다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도 디딤돌·버팀목대출 등 정책대출은 확대했다. 그 결과 지난해(41조6000억 원) 가계대출 증가 폭은 전년(10조1000억 원)과 비교해 4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정책대출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대출 총량 관리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매번 그랬듯이 결국 죽어나는 것은 내 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실수요자들이다. 당장 은행들이 정책에 맞춰 월별·분기별로 가계대출 관리에 나서면서 '대출 오픈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출을 받더라도 문제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섣불리 내리지 못하면서, 가계대출 금리가 기업대출보다 높은 기현상이 벌어진 탓이다. 지난 1월 예금은행이 신규 취급한 가계대출 금리는 연 4.65%로, 중소기업(4.53%)과 대기업(4.48%)보다 높았다.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정책이, 서민들에게 더 높은 금융 비용을 부담하도록 만드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여기에 더해 은행들에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반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가계대출을 줄이라는 요구와 금리를 낮추라는 요구가 동시에 나오니 은행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대출 규모를 억제하는 대신 형식적인 금리 인하에 그치거나, 아예 대출 취급을 까다롭게 조정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가계대출 금리를 아예 내리지 못한 은행도 있다.

시장은 정책 실험장이 아니다. 정책은 예측 가능해야 하며, 명확한 목표 아래 일관되게 추진돼야 한다. 이미 우리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규제와 완화의 반복이 금융시장과 실수요자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줬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무엇보다 가계부채 문제는 단순히 숫자로 관리할 대상이 아니다. 서민경제의 기초를 흔들 수 있는 핵심 변수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섣부른 규제 완화도, 즉흥적인 규제 강화도 경계해야 한다.

불쏘시개를 던졌지만 시장을 안정시킬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결국 정부, 금융당국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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