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최상위권인 것으로 거듭 확인됐다. 정부는 가계부채 비율을 80%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부동산 투기 심리가 꺾이지 않아 앞날은 미지수다.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도 악재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정부 대책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컨트롤타워가 있는지도 묻게 된다.
16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였다. 조사 대상 38개국 중 캐나다에 이어 2위다. 전 세계 평균(60.3%)을 크게 웃돈다. 앞서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통계에서도 우리 부채 부담은 최상위권이었다. 지난해 3분기 말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7%로, 세계 44개국 중 5위였다. 역시 조사 국가 평균(61.9%)보다 훨씬 높았다. 우리보다 지표가 좋을 게 없는 국가는 스위스(125.7%) 호주(111.5%) 캐나다(100.1%) 네덜란드(94.2%)뿐이다.
가계부채는 국내외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지목하는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당국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데도 악성 지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집값 탓이 크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택가격이 특히 큰 문제다. 전임 문재인 정부 때 국가적 골칫거리가 된 ‘영끌’·‘빚투’ 현상이 일부 지역에서 되살아난 감마저 없지 않다.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남권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는 점부터 심상치 않다. 서울시는 지난달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291곳에 대한 토지거래허가구역 규제를 풀었다. ‘2년간 실거주’ 등의 족쇄를 푼 것이다. 탈규제라는 큰 방향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점이 문제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후 30일간 거래를 분석한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월 13일부터 3월 14일까지 잠실·삼성·대치·청담동 아파트 평균 가격은 28억2000만 원으로 해제 전 30일(1월 14일∼2월 12일) 평균 가격 27억2000만 원보다 3.7% 올랐다. 거래량은 전 평형 기준 토지거래허가 해제 이후가 이전보다 77건 늘었다. ‘똘똘한 한 채’ 선호가 여전한 상황에서 ‘지금 안 사면 더 오를 것’이라는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왜 하필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민감한 시기에 규제망을 무력화했는지 모를 일이다.
작금의 부동산 상황을 방치하면 지역 단위의 ‘상승’ 바람이 전국적 규모의 태풍으로 변할 수도 있다. 전임 정부 때 비정상적으로 부푼 부동산 거품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2차 거품 잔치가 전개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되게 마련이다. 경계가 필요하다. 돌이켜 보면 정부의 오락가락 금융정책이 화를 자초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혀를 찰 노릇이다. 경기 침체 국면에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면 부작용과 역기능이 클 수밖에 없다. 민생을 파탄 내고 나라를 거덜 내는 것도 시간문제가 될 수 있다. 망국적 심리가 더 확산하기 전에 투기 바람을 키우는 돈줄은 조여야 한다. 정책 엇박자는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