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정치적 수사' 속에 숨겨진 진실

입력 2025-03-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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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희 부국장 겸 산업부장
▲이초희 부국장 겸 산업부장

상법개정, 주주보호가 명분이지만
소송 남발에 투자는 뒷전으로 밀려
미래 좀먹는 후진적 기업관 버려야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2019년작 ‘브렉시트’에는 독특한 캐릭터의 천재 선거 전략가 도미닉 커밍스란 인물이 등장한다. 영국의 유럽연합(EU)탈퇴가 비이성적인 선택이라는게 대중들의 상식일 때 도미닉은 이를 뒤집어 버리고 브렉시트를 성공시켰던 실존 인물이다.

도미닉이 사용한 방법은 간단했다. 메시지로 대중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도록 했다. 당시 그가 사용했던 구호는 ‘주도권을 다시 찾자’(Take Back Control)였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GA).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이 구호는 설마 그게 가능할까를 현실로 만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을 대표하는 문장이다.

두 예시가 증명하는 것은 이성과 상식의 판단보다 유권자들을 더 빠르고 확실히 사로잡는 것은 ‘정치적 수사’ 라는 점이다. 간단하면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슬로건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미래나 결과를 감추고 대중들의 판단을 흐린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상법 개정안의 본질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신기루처럼 아른거리는 정치적 수사가 실체적 진실을 가린다. 이 법안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개미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표심으로 연결하려는 꼼수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개미들의 소외감을 자극해 정권 심판으로 이어가려는 셈법이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주주를 보호한다는 대의 명분을 방패로 내세우지만 공허한 외침이다. 배당을 원하는 주주가 있는가 하면,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이도 있다. 모든 주주의 이해관계가 다르니 ‘주주를 위하여’ 라는 말은 ‘국민을 위하여’라는 정치인들의 구호 보다 더 모호하다.

‘수단의 과잉성’도 문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유례 없는 법으로 자칫 한국 기업들은 국제 투기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

2019년 엘리엇이 현대자동차그룹을 공격했던 일을 떠올려보자. 당시 이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가치 제고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고배당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주총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그룹이 추진하던 지배구조 개편안은 무산됐다.

상법 개정안을 두고 재계가 우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것은 그럴듯한 명분이 있지만 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다.

5%만 주식을 갖고 있어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면 ‘손배 폭탄’을 빙자한 기업 괴롭히기가 성행할 것은 자명하다. “저희는 올해 투자를 억제하고 이익을 늘려 주가를 높이겠습니다.” 이런 경영 계획을 내놓아야 주주소송을 피할 수 있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주주 보호란 성역 앞에서 무릎 꿇는 기업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회사와 주주의 이해관계는 늘 일치하지 않는다. 주주는 당장의 배당 확대를 원하지만 회사는 미래 투자를 위해 현금을 보유해야 할 수도 있다. 연구개발(R&D)에 큰 돈을 쏟아부어야 할 때도 있고, 신사업 진출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할 때도 있다. 주주들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해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생존과 성장을 위한 결단은 뒷전으로 밀리고, 당장의 주가 부양이나 고배당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상법 개정안은 규제의 만능주의, 기업관의 후진성, 법 제정의 졸속함을 모두 담고 있다. 규제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것은 거대 야당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 그대로다.

이번 개정안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키울 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은 물론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등 미래 산업의 경쟁력도 잃어버릴 수 있다. 그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미래인지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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