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낸드, 중국 기업이 거의 따라잡아
반도체 글로벌 패권 전쟁 심화
"정부, 위기 극복 방안 서둘러야"
“지금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선두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10~20년 전에 그만한 투자와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투자를 게을리하고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면 10년 뒤 우리나라의 첨단 산업 전반은 불투명해진다.”
현재 반도체 시장을 바라본 한 대학교 반도체공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간 경영진들의 선견지명과 연구원들의 기술력으로 영광을 안았지만, 지금 같은 여건이라면 우리 반도체의 미래는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경쟁력의 바탕이 돼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 압박과 중국의 빠른 추격으로 연일 위태로운 상태다. 탄핵 정국으로 정부는 주도권을 잃었는데 국회는 조기 대선 국면으로 돌입하며 반도체 산업 지원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17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아직 한국 기업들은 주력 제품인 D램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은 한국 71.5%, 중국 1.7%로 나타났다. 특히 인공지능(AI) 시장의 핵심 반도체로 꼽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90~95%를 점유하며 시장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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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분야 기술은 중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3년부터 5세대(1b, 12나노미터) D램을 양산 중이지만, 중국 CXMT는 지난해부터 3세대(1z, 16나노미터) 양산을 시작한다. 기술 격차가 거의 5년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CXMT가 구형 D램 생산량을 크게 늘리며 한국 반도체 기업 수익성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CXMT는 신규 팹을 빠르게 확대하며 글로벌 생산 비중을 늘려갈 방침이다.
낸드 분야는 거의 따라잡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는 321단, 삼성전자는 286단을 양산했다. 중국 YXMT는 2023년 232단을 양산했다. 두 나라의 낸드 기술 격차는 단 1~2년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우리에게 반도체란 북한의 핵과 같은 존재다. 이미 낸드는 뺏겼다면 D램은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한다”면서 “아무런 대책 없이 반대만 하는 정치권이나, 발전 없는 경영진들 때문에 언제 뒤집혀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며 국내 반도체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국 지방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주요 국가에서 기술유출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의 새로운 정책과 대미 통상 환경 변화도 큰 변수로 작용한다. 트럼프 정부가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우리 기업에 불리한 상황이 형성되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그런데 지금 정치권은 마치 국내 시장만 생각하는 듯하다. 모든 기준이 국내 시장 환경에 맞춰져 있어 지금의 글로벌 패권 전쟁에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을 주 52시간제에서 예외로 두는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국회의 논의가 수개월째 공전 중이다. 이를 두고 여야의 입장 차이가 여전한 상황이니 정부는 예외적인 조치를 강구했다. 법 개정 없이 반도체 R&D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특례를 신설해 근로시간 유연성을 확보한 것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특구 지정 △반도체 산업 관련 기금 조성 △대통령 소속 국가반도체위원회 신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52시간 근무 예외 조항을 두고 공방을 벌여 왔다.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제외하더라도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 밖에도 반도체 기업의 통합투자세액 공제율을 5%포인트(p) 상향하고, 신성장·원천기술 및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R&D 세액공제 적용기한을 2029년 말까지 5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반도체 기업의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주된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