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 서울시가 ‘규제철폐’ 드라이브를 걸었다. 석 달간 83건. 시민 불편을 초래하고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걸림돌을 과감히 걷어냈다. 얼어붙은 내수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과 혁신 없이는 한국경제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간절함이 담겼다.
최근 중국은 ‘파괴적 혁신’의 진원지가 돼 가고 있다. 서양 기술을 베끼던 중국이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전기차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선두자리를 꿰차고 있다. ‘테크 타이탄’을 필두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혁신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자가발전’ 속도보다 더 무서운 건, 중국 사회를 지배하는 ‘정신’이다. 신기술이 빠르게 상용화되는 과정에서 승리를 ‘맛본’ 기업들은 도전정신에 고취돼 있다. “중국의 기업가 문화에 비하면 실리콘밸리는 활력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취재차 만난 한국 스타트업들은 패배감에 절어 있었다. 디지털 시장 개척에 나선 기업들이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며 의회에 불려다니자 “한국에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푸념이 나왔다. 신기술 상용화를 두고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한 업체는 “한국엔 답이 없다”고 했고, 사업 인허가 받으려고 소송까지 치른 스타트업 대표는 “기업가 존중이 없다”고도 했다.
한국의 혁신 정신을 갉아먹은 건 지난 20년간 이들을 옭아맨 규제였다. 수십 년 전 만든 법으로 디지털 기반 새로운 비즈니스 출현을 금지했다. 1953년과 1989년 각각 제정된 약사법과 의료법이 헬스케어 혁신을 막았고, 1961년 제정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공유경제를 가로막았다. 권한을 쥔 규제부처는 과도한 법 해석으로 ‘갑질’을 하면서 기존 이익집단의 밥그릇을 지켜줬다. 규제샌드박스가 있었지만, 시늉에 가까웠다. 해외에 사례가 있다고 하면 "그게 무슨 신산업이냐"고 하고, 없다고 하면 "위험하다"고 반려했다. 되는 길보다 안되는 이유를 먼저 찾았다. ‘표밭’ 눈치보기 바쁜 의회는 개정안을 뭉갰고, 한술 더 떠 금지법을 양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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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는 소비자와 한국경제가 떠안았다. “야밤에 체리 먹고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났는데 목숨을 살려줘서 감사하다”며 시민이 극찬한 ‘화상투약기’는 약사회와 보건복지부의 ‘몽니’로 일부 지역에서 겨우 실증특례를 하고 있다. 한국이 먼저 개발한 해당 기술은 중국 ‘무인 AI진료소’에 세계 최초 타이틀도 넘겨줬다. 의사가 부족하고 비용도 비싼 중국 소도시 시민들은 소비자 친화적인 혁신의 덕을 누리고 있다. 2018년 출시된 플랫폼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 타다는 당시 가입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택시비는 올리면서 승객을 골라태우는 얌체택시에 지친 시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2020년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민 편의는 물론 미래 성장 동력도 자취를 감췄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리커창 전 중국 총리는 “위챗이 처음 등장했을 때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일단 지켜본 다음 규범을 만들기로 했다”면서 “만약 우리가 낡은 방식의 통제를 고수했다면 오늘의 위챗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혁신은 사각지대에 있던 시민들의 편의를 증진시켰고 경제체질을 탈바꿈했으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 길까지 터줬다.
국가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없고, 오로지 밥그릇과 표밖에 안 보이는 이들이 주도하는 정치를 끝내야 한국에 길이 생긴다. 서울시의 ‘규제철폐’ 선도는 혁신의 불씨를 타오르게 하는 마중물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