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를 발표했다. 유리천장지수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승진을 막는 장벽을 말하는데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고등교육, 노동 참여율, 성별 임금 격차, 양육비용, 출산 및 육아 휴가 권리, 관리직 여성 비율 등 10가지의 지표를 종합해 산정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12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고 올해는 28위로 한 단계 상승했다. 주요 이유로는 여성 노동자들이 높은 교육 수준에 비해 노동 시장 진입률이 낮다는 것이다. 또 성별 임금 격차가 크고, 한창 일해야 할 시기에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 관리에 실패한다. 그 결과 관리자로 진입하거나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된다.
유리천장지수가 상위권인 국가들은 일찍부터 인적 다양성 확보에 신경 쓰면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왔다. 다양한 배경의 인력이 모인 집단이 동질적 배경의 집단에 비해 더 유연한 시각, 더 다양한 아이디어,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양성이 유연성을 만들고, 유연성이 더 높은 생산성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해외의 기업, 대학, 연구소, 정부, 의회 등 여러 기관을 방문했는데, 많은 여성 관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는 정책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선 시기는 2000년대 이후로 다소 늦은 편이다. 후발주자로 서두른 덕분에 2%에 머물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2024년 20%로 성장했고, 국내 1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2019년 3.5%에서 2024년 6.3%로 늘어났으나 아직 부족하다. 이런 통계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여전히 관리직에 진출한 여성들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
현재 이공계 여성 인재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 돕는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견고한 유리천장에도 불구하고 경력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활동하는 여성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그들이 멘토로서 후배들에게 자기 경험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첨단전략산업 분야는 심각한 인재 부족이 예상되는데, 우리나라가 직면한 어려움 중 하나는 저출생으로 인한 노동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국인 노동자 유입 확대, 정년 연장, 인공지능(AI) 도입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에 대한 연례 협의 보고서를 발표할 때마다 ‘여성의 노동 참여를 촉진하여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라는 조언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매년 ‘K-걸스데이(K-Girl’s Day)‘ 행사를 개최해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산업기술 현장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이 이공계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진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됐는데, 지난 11년간 약 2만 명의 여학생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공학을 전공하는 여학생 비율이나 여성 연구자들의 비율은 여전히 20%대 초반에 그친다. 이를 더욱 확대하려면 기업에서의 여성이사 비율을 높이기 위한 단계적 조치 등이 필요하다.
KIAT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첨단산업 인재혁신 특별법’에 따라 첨단산업 분야 여성 인력에 대한 현황을 조사한다. 이 결과는 산업기술 인재 양성과 관련한 정책을 수립할 때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여성 인재들이 배운 지식을 사회에서 활용할수록 기업의 생산성, 나아가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다양한 노력이 쌓여 우리나라가 유리천장지수 상위권 국가로 하루빨리 도약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