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팔 벌리며 찾아왔던 봄이 거센 바람에 뺨을 맞았는데요. 그 뺨은 봄옷을 꺼내입었던 이들도 세차게 내주고 말았죠. 봄마다 찾아오는 꽃샘추위라지만, 이번엔 그 시샘이 좀 너무한데요. 한참을 늦은 주제에 친구(눈)까지 데리고 거하게 입성했습니다.
18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0도까지 내려가는 등 봄철 유명한 꽃샘추위가 찾아왔는데요. 곳곳에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체감온도는 더 낮아졌죠. 강풍주의보에 이어 대설주의보까지 발효되면서 많은 눈도 내렸는데요. 이 정도면 겨울인 줄 알고 잘못 찾아온 추위 수준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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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8시부터 18일 오후 2시까지 내린 최심신적설(해당 기간 새로 내려 가장 많이 쌓인 눈의 깊이)을 보면 향로봉(고성) 42.3㎝, 해안(양구) 29.5㎝, 외촌(철원) 14.9㎝, 장호원(이천) 13.9㎝, 의정부 13.8㎝, 남이섬(춘천) 13.6㎝, 강북(서울) 11.9㎝ 등으로 3월이 무색한 폭설이 기록됐습니다. 서울은 관련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후 역대 가장 늦은 시기에 내린 대설주의보였죠.
바람도 심상치 않았는데요. 강풍특보가 발효된 제주도와 서해안, 동해안 지역에서는 초속 20~30m의 강풍이 불어왔죠. 제주공항 출발, 도착 항공편 지연이 이어졌고, 인천공항 또한 5편 이상이 지연됐는데요. 폭설로 대중교통으로 시민들이 몰리면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이날 출근 시간대 수도권 전철을 14회 추가 운행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는 지각생 꽃샘추위, 올해는 어디 출신일까요?

올해 꽃샘추위의 원인은 바로 극저기압인데요. 전문가들은 “한반도 서쪽에서 급격하게 발달한 극저기압이 지나가면서 북쪽의 찬 공기를 강하게 끌어내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극저기압은 말 그대로 기압이 매우 낮은 상태를 뜻하는데요. 일반적으로 24시간 동안 24hPa 이상 기압이 하락할 경우 폭탄 저기압으로 분류됩니다. 이 저기압이 형성되면 강한 바람이 불고, 기압 차이가 벌어지면서 한랭전선이 발달해 폭설이나 한파를 동반할 가능성이 크죠.
특히, 이번 극저기압은 한반도를 통과하면서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맞물려 더욱 강력한 한파를 불러왔습니다. 이 북극에서 떨어져나온 영하 40도의 얼음 공기 덩어리가 서해상을 통과하며 해수면과 대기의 온도 차로 눈구름대를 만들었고, 이것이 폭설의 원인이 됐는데요.

이 극저기압은 빠르게 발달하는 경우, 혹은 빠져나갈 때도 한파와 폭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극저기압이 빠르게 발달하면 저기압 중심으로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몰려들면서 기온변화와 강한 강수 현상이 동반되는데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폭설이나 강우를 유발하고, 서쪽에서 극저기압이 발달하면 서해안과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많죠.
이 같은 사례가 바로 2019년 3월과 올해인데요. 2019년 3월 19일에 한반도 서쪽에서 극저기압이 급격히 발달하면서 폭설과 강풍이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강원 산간 지역에 최대 50㎝의 폭설이 기록됐고, 초속 30m의 강풍으로 제주도와 동해안의 피해가 속출했죠. 서울 기온이 영하 6도, 강원도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는데요. 도로 결빙과 강풍으로 항공기 100편 이상이 결항하고 교통사고도 다수 기록됐습니다. 2018년 3월 말에도 제주도와 동해안에서 초속 30m 이상의 강풍과 폭설이 발생한 바 있죠.

극저기압이 한반도를 지나 동쪽으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뒤쪽으로 북서풍이 강하게 유입되는데요. 이때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한파와 함께 서해안 지역에 눈구름대가 만들어져 폭설이 내리게 됩니다. 이런 사례는 2010년과 2014년, 2020년에도 있었는데요.
2010년에는 3월 9일 동해안과 강원산간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죠. 강릉 77.7㎝, 울릉도 110㎝의 적설량을 기록하면서 도시 기능이 마비되고 정전·교통 대란이 발생했습니다. 2014년 3월에도 극저기압이 동해로 이동한 후 찬 공기가 유입되며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눈 폭탄이 쏟아졌죠. 2020년 3월 15일에도 극저기앞이 한반도를 지나면서 전국적인 영하권 추위가 찾아왔고, 서리가 내리면서 농작물 냉해 피해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꽃샘추위의 원인은 모두 극저기압 때문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사실 대부분의 꽃샘추위의 원인은 시베리아 고기압 때문입니다.
극저기압이 한반도를 통과하면서 찬 공기를 강하게 끌어내리는 경우도 꽃샘추위가 강력해지지만, 겨울이 끝나가면서 약해졌던 시베리아 고기압이 다시 강해지곤 하는데요. 이때 한반도에 찬 공기가 유입돼 기온이 뚝 떨어지죠. 이 경우 하늘이 맑은 경우가 많고 주로 건조한 바람과 한파가 특징입니다. 이동성 고기압과 대륙 고기압이 충돌하는 때도 꽃샘추위가 찾아옵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공기(이동성 고기압)와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대륙 고기압)가 출동하면서 급격한 기온 변화가 발생하는 건데요. 이 경우 하루는 춥고, 다음날을 따뜻해지는 롤러코스터같은 날씨가 이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봄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요? 꽃샘추위는 언제까지일까요? 기상청에 따르면 춘분을 하루 앞둔 19일에도 영하권 추위가 이어지는데요.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지죠. 18일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강한 바람이 불면서 체감 온도는 최저 영하 8도 안팎까지 내려가겠습니다.
다행히 20일 이후부터는 다시 기온이 오를 전망인데요. 서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점차 평년 기온을 회복할 예정이죠. 다음 주 초까지 낮 기온이 20도를 웃도는 등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이면서 벚꽃개화 등 봄꽃을 만끽할 순간이 찾아오겠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또 이 변덕스러운 기상 상황으로 일시적인 한파가 올 가능성이 있는데요. 기후 변화로 봄철 이상 기온이 점점 심해지는 이때, 겨울옷 수납은 조금만 늦추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