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군중의 신화 ‘국민정서법’

입력 2025-03-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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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전문위원ㆍ언론학 박사

8일, 언제나 시끄러운 광화문 광장이지만 다시 한 번 소란이 일어났다.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후 구속 기소되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돼 풀려났기 때문이다. 그는 한층 밝은 표정으로 대통령 관저 앞 대중 앞에 섰다. 그를 맞이하는 군중은 한 손에는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는 미국의 성조기를 흔들고 있었다. ‘친윤파’의 열렬한 환호 저편에는 또 다른 혼란이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보수 진영에서조차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그렇게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군중의 목소리를 달래기 위해서 그들의 요구에 성급히 법적 판단을 내리고 또 막무가내로 취소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9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을 당시, 한국에서 다년 간 특파원으로 일했던 영국 언론인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은 2016년 12월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를 통해 한국의 정치를 ‘분노에 찬 신(Wrathful god)’과 같은 군중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법적 절차대로 했다면, 미국에서는 2년도 넘게 걸렸을 탄핵이 한국에서는 불과 몇 달 새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것을 보며 그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이루어진 근거 또한 ‘국민 정서’였다는 점에서 더욱 경악했다고 한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과 구속 취소 또한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이유로 절차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한 채 구속된 것 역시 잘못됐지만, 그렇게 한번 결정된 법적 판단을 또다시 적법한 절차와 관행을 무시한 채 취소하는 것 역시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군중 신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법치 민주주의가 점점 무너지고 있는 데에는 언제부턴가 군중(crowd)이 정치적인 의사 결정의 요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광장에 모인 군중이 부패한 정치적 지도자를 무너뜨리는 신화적 내러티브는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의 업적이자,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보호하고 포용해야 할 ‘개인의 집합’, ‘집단’, 혹은 ‘단체’와 ‘군중’은 다르다. 전자가 다양한 개별성이 보호되고 존중된다면, 후자는 그것을 상쇄하면서 발달한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군중은 스스로를 응집하고 동원하기 위해 파멸적인 목표를 세운다고 했다.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이성을 신화와 최면으로 대체하면서 말이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에서 법이 담당하고 있던 자리를 군중의 격분과 조급함이 대체하게 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중우정치이다. 마이클 브린은 앞서 칼럼에서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 제1조 2항은 국가 권력이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선출돼야 한다는 뜻이지, 국민이 국가 권력의 직접적인 행사자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런 국민의 권리 또한 법을 기반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제도의 최종적인 집행자는 국민이 아니라 법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주의는 놀랍도록 차갑고 냉정하다. 법치를 잃은 민주주의, 현대사에서 군중에게 뺏긴 민주주의의 말로가 어땠는지 다시 돌이켜보며, 한국의 법치주의의 회복을 도모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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