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때는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라 그저 슬퍼하기만 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데 인생에서 펼칠 것을 못 펼치고, 누릴 것을 못 누리고 떠난 젊은 친구의 죽음이 애통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기적인 마음도 갖는 것이 젊을 때 친구의 죽음이다. 사고라면 ‘나도 조심해야지’, 병이라면 ‘이참에 건강 검진을 받아야겠다’ 생각했다. 젊은 친구가 떠나면, 나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을 문득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살 만큼 산 노인에게 친구의 죽음은 나도 이제 남은 삶이 얼마 없음을, 무언가를 이룰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낸다.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이다. 이제 나는 혼자라는 외로움이다. 그 외로움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공허다. 외로움과 공허 속에서 노인은 혈압약을 타 갔다. 그는 다음 달까지 매일 아침 약봉지를 입에 떨어 넣을 것이다. 다 죽고 나만 남은 삶을 연명케 하는 것은 이 약봉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봄이 다시 찾아왔다. 여기저기서 나뭇가지들이 새싹을 터트리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겨울 죽었던 것 같았던 생명들이 아직 살아있다고 또 살아났다고 외치는 것 같다. 이 봄의 생명력을 노인은 보았을까? 친구의 부고 소식을 비집고 들어온 봄 향기를 노인이 맡았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으로 나는 이 약봉지가 노인에게 하나의 의미이기를 바라면서 처방전을 주었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