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잇, 조기만도 못한 놈!"
조상들이 종종 사용하던 이 말, 혹시 들어보신 적은 있나요? 사극이나 드라마에서는 들어본 적 있으나 아마 실제로는 없을 텐데요. 과거에 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비꼬는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과연 조기가 얼마나 성실한 생선이길래 이런 표현이 생겼을까요.
조기는 농어목 민어과에 속하는 어종으로,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인기 생선입니다. 조기 한 마리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죠. 조기는 몸길이가 20~30cm로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그 맛만큼은 뛰어납니다. 특히 '굴비'로 가공됐을 때의 그 감칠맛은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할 정도죠.
관련 뉴스

조기가 ‘약속을 잘 지키는 생선’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독특한 습성과 행동 때문입니다.
조기는 주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연안에서 서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잡히며, 산란을 위해 계절에 맞춰 이동하는 습성이 있죠.
조기는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남쪽 바다, 즉 제주도 남서쪽 해역에서 머물다가 산란기가 다가오는 4월께 정확히 연평도 근처까지 북상합니다. 이 이동 패턴이 매년 일정하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한 시기에 맞춰 나타나기 때문에 ‘약속을 잘 지키는 생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예전 어부들은 이런 조기의 습성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고, 조기의 이동 시기를 기준으로 어획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조기가 예상한 시기에 나타나지 않으면 바다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조기는 자연의 흐름을 철저히 따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시기에 이동하는 생선이기 때문에 과거 어른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을 비꼬아 “조기보다 못한 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또한, 조기는 떼를 지어 다니는 습성도 있어 한 마리가 움직이면 나머지도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며 함께 이동합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예측 가능성이 커 ‘신뢰할 수 있는 생선’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조기는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약속을 잘 지키는 듯한 특성을 가진 생선으로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인식됐습니다.
조기는 단연 구이로 먹는 것이 가장 익숙한데요. 조기구이는 오메가3, 고단백, 비타민D 등이 풍부해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주고 뼈 건강에도 좋은 요리로 꼽히죠. 다른 생선에 비해 비린내가 적어 해산물을 잘 못 먹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으로도 꼽힙니다.
조기구이를 즐길 때는 소금과 후추로 간단하게 간을 하고, 레몬즙이나 올리브유를 살짝 뿌려주면 맛이 배가 됩니다. 신선한 채소와 함께 곁들이면 영양 균형도 맞출 수 있으니 꼭 참고하세요.

조기는 맛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스토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굴비'는 사실 조기를 건조한 것이죠. 하지만 왜 '굴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이야기는 고려 인종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권신 이자겸은 왕위를 탐내다 실각해 전라도 법성포(현재의 영광)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유배지에서 그는 바닷바람에 살짝 말린 조기를 맛보게 됐고, 그 풍미에 감탄해 이를 왕에게 진상품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조기를 진상하면서 그는 ‘나는 굽히지 않았다’라는 의미를 담아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굴(屈)'은 굽힐 굴, '비(非)'는 아닐 비. 즉, ‘나는 비록 유배를 당했지만,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라는 뜻을 담은 것이죠. 왕은 이 조기의 맛을 보고 반해 자주 찾게 됐고, 결국 오늘날에도 '영광굴비'라는 이름으로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