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재구성해 정치적 영향행사
비판적 성찰통해 공론장 역할하길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세상은 온통 ‘정치’가 되었다. 우리 사회는 극단적 대립의 표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흑과 백,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의 이항 대립은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매우 간단한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완충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세상 모든 일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표상의 정치는 현실을 영원히 구속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은 정치의 시간이다. 경제도 과학도 문화도 정치에 예속되었다. K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오락의 둘레를 벗어나 정치적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K팝 팬덤은 조직적인 목소리를 낸다. K팝은 이제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탄핵 찬성 집회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고 있다. 시위대는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줘, 상처 입은 내 맘까지”,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같은 가사에 이입된다. 팬덤의 상징인 응원봉은 촛불을 대신해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 문화적 취향의 정치화 현상이다.
이런 사례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의 온라인 집회에는 K팝 팬덤이 대규모로 티켓을 예매한 후 실제 참석하지 않고 자리를 비워두면서 주목받았다. 태국의 민주화 운동은 K팝 팬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기부 활동을 이끄는 등 실제적인 영향력을 만들어 냈다. 프랑스 총선에 나선 정당들은 K팝에서 영감을 얻은 쇼츠와 직캠을 활용한 선거 운동을 펼쳤다.
K팝과 팬덤의 정치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문화적?정치적 흐름을 보여준다. 온라인 플랫폼과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K팝 팬덤은 콘텐츠 액티비즘의 강력한 사례가 되었다. 팬덤은 ‘참여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화콘텐츠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K콘텐츠의 정치화는 우연이 아니다. 문화는 본래부터 정치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특정한 의미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장이다. 문화연구자 스튜어트 홀은 문화를 다양한 의미가 서로 투쟁하는 장으로 보았다. 문화콘텐츠 역시 비정치적 방식으로 존재할 수 없다. K팝은 더 이상 서비스 상품의 단순한 생산과 소비로 규정될 수 없다. K팝은 그 자체가 다양한 관점과 태도를 통해 해석되고 적용되면서, 정치적 주체 형성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이제 K팝의 기획자와 생산자는 ‘비정치적’이라는 입장만 고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K팝이 가진 다양한 정치적 색깔을 통해 이를 글로벌 팬덤과 연결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팬덤은 특정 아이돌을 향유하는 현상을 넘어, 신념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팬덤의 정치화는 참여 민주주의의 주요한 표상이 되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정치가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휘둘리거나, 기업과 정부에 의해 통제될 가능성도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 이론을 따르면, K팝은 자본과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K팝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정치적 성격을 이용해 특정한 가치관을 위한 홍보물이 되거나 정치적 민감성을 이유로 검열당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콘텐츠 시대의 K팝이 콘텐츠 액티비즘의 한 형식으로서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팬덤의 정치화가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논의와 비판적인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K팝이 공론장의 순기능을 통해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