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세제·보조금 지원으로 경쟁력 강화…‘수출 주도 성장’ 의존도 낮춰야” [韓 제조업이 무너진다⑤]

입력 2025-03-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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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03-20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주력 산업별로 핵심과제 진단해야
생산촉진세제 등 강력한 지원책 필요
기업 기술 혁신·판로 다변화 모색해야
수출 벗어나 서비스업 활성화도 추구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4월 ‘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나? (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FT는 한국 성장모델의 주축이었던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25년 3월. FT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성장엔진이 급속도로 꺼져가고 있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린다. 제조업 ‘르네상스’ 시대를 주름잡았던 국가대표 기업들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 주력 산업들의 글로벌 존재감은 점차 위축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 , 중국의 과학굴기 등으로 글로벌 무역전쟁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는 과도한 반기업 정책, 노동시장 경직성, 인재 부족 등 여러 장애물이 기업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다. 본지는 대한민국 제조업이 처한 현실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그래픽=신미영 기자 win8226@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닥뜨리면서 정부와 기업들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중국의 기술력 향상, 글로벌 공급망 불안, 국내 각종 규제 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헤쳐갈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제조업 내 주력 산업별로 위기 요인과 핵심과제를 진단해 적극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의 과감한 세제·보조금·연구개발(R&D) 지원으로 기업들이 국내에서 생산·판매 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기업들에게는 기술 혁신, 판로 다변화 등을 통해 경쟁력 강화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에만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경영대학원장)는 20일 본지에 “공급망 불안정, 대규모 투자 부담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반도체 산업은 첨단 기술 경쟁력 강화, 공급망 안전성 확보 등이 핵심과제가 돼야 한다”면서 “국내 수요 부진, 미국의 관세 인상 영향을 받는 자동차 산업은 통상환경 변화 대응, 적극적인 내수 판매책 등이 대안으로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석유화학 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 업황 회복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공급과잉 설비 합리화를 추구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이 개발돼야 한다”며 “철강산업은 원가경쟁력 회복과 친환경기술 개발이 핵심과제”라고 진단했다.

박병열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보호무역주의가 심했던 인도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례적으로 관세 인하 조치를 선언하며 수출 기지의 역할을 할 가능성을 높이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면서 “현재 우리나라도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 강점이 있는 산업에서 모두 이득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실리를 따져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대미 무역흑자가 급증한 품목을 중심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전후로 승용차, 컴퓨터 부품, 냉장고 등 품목에서 대미 무역흑자가 큰 품목들을 중심으로 세부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차원 과감한 세제 지원 필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관 합동 미 관세조치 대응전략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민관 합동 미 관세조치 대응전략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국내 제조업이 다시 부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세제·보조금·R&D 지원을 통해 기업들이 생산·판매 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가 대다수였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국내 생산·판매 기업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전략산업 국내 생산촉진세제’ 도입을 논의 중이다. 수출 기업을 고려해 ‘국내 생산, 해외 판매’ 기업에 대한 생산촉진세제 적용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그간 기업들은 미국·일본 등 주요국들이 펼치는 생산량 세액공제 혜택 등 적극적인 지원책이 국내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토로해왔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투자세액공제, 생산세액공제 등 다양한 방안들이 있다”면서 “특히 생산세액공제는 국내 생산에 대해 직접적으로 혜택을 주는 형태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국내 생산이 유리하다는 효과를 만들어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노사관계나 근로시간 문제 등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난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투자 세액 공제나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서 초기 투자를 활성화시킬 수 있게끔 하고, 생산에도 가능하면 비용을 적게 들게 하는 조치들이 필요하다”며 “다만 어느 정도 수준이 효과적인지는 법안을 마련할 때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재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요국들이 첨단산업 주도권을 위한 적극적인 산업정책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산업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특히 첨단산업을 이끄는 글로벌 선도기업의 투자를 위한 포괄적이고 과감한 지원과 국내 규제환경 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과 함께 기업들도 꾸준한 기술 혁신과 판로 다변화를 꾀해야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 교수는 “기업은 기술 혁신, 비용 효율화, 공급망 관리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공급망 관리는 원료나 부품 수입부터 시작해 중간재, 완제품 수출 등에 있어서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현재 미국이나 중국에 공급망이 의존된 상황에서 다변화를 통해 이슈가 터졌을 때 크게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피력했다.

엄수형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앤드컴퍼니 파트너는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주최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주력 산업 소속 기업들은 기초 체력을 강화하고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며 “지속가능한 재무적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운영 혁신이 필수적”이라고 당부했다.

‘수출 주도 성장’ 벗어나 서비스업도 키워야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차량들이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장기적으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주도 성장에서 벗어나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제조업의 생산성은 2007~2017년 정체기를 겪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2018년~2022년 가파르게 증가했다. 반면 서비스업 생산성은 2007년 3443만 원에서 2022년 3663만 원으로 15년 동안 6.4% 증가에 그쳤다.

서비스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비스 사업자들이 R&D 및 시설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책지원이 제조업 수준으로 확대돼야 한다. 최근 한경협은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위원회’를 출범했고 분과별 정책과제를 국회와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안중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서비스업은 물류, 게임, 뷰티, 개발 등 다양한 분야가 다 포함돼 있어 미래 산업 먹거리로 키워야 할 분야”라며 “최근 서비스업에 대한 지원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에 많이 투자한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일례로 물류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것을 개발하는 투자도 R&D의 일환으로 볼 수 있고, 인력이나 기술도 다 마찬가지”라면서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서비스업 투자에 대한 재정·세제 지원을 제조업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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