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에게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가수 임영웅을 만나려 한다고 했다. 보이스피싱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중장년층, 고령자들의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임영웅의 입을 빌려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그의 말에선 꽤 진심이 묻어났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예방과 대응책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힘을 쏟아왔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텔레비전, 라디오 광고는 물론 영화관이나 대중교통까지 공익광고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금감원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신청 기준 피해액이 9월 249억 원에서 12월 610억 원으로 불과 3개월 만에 2.4배 뛰었다.
문제는 보이스피싱 사기 수법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 노주현은 유튜브를 통해 보이스피싱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소상공인지원금을 받으려면 기존 대출 갚아야 한다는 사기범의 말에 속아 돈을 입금했다고 했다. 그는 '급한 마음에 미끼를 물었다'고 표현했다.
최근에는 카드 배송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수법이 기승을 부리며 고액 피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금감원은 보이스피싱 소비자경보 등급을 '주의'에서 '경고'로 상향 발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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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짜 카드 배송을 앞세운 기관 사칭형 사기에 고령층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피해자의 약 80%가 여성이며, 이 중 60대 이상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서울에서는 강남 3구의 피해액이 서울 전체 피해액의 약 30%를 차지했다.
자녀의 연락인 것처럼 속여 문자메시지를 통해 입금을 요구하는 문자 사기(스미싱)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발표한 스미싱 신고(접수) 차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스미싱 신고 건수는 219만6469건으로 1년 새 4.3배 늘었다.
은행 직원이 이상한 낌새를 채고 고객의 출금을 막아서도, 사기범의 압박 속에 결국 돈을 넘겨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최선을 다해 구축한 방지 시스템에서도 모두를 지킬 수 없는 것이다.
보이스피싱 수법이 치밀해지고 대담해지면서,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고령층이다. 모아둔 목돈을 한순간에 날리고도 추가 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이들에게 보이스피싱은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재앙에 가깝다.
굳이 임영웅이 아니어도, 서로가 서로의 '영웅'이 될 수는 없을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관심'이다. 낯선 전화가 걸려오기 전에 주변인이 한 번 더 관심을 기울여주고, 고령층이 경각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면 소중한 돈이 사기범의 손에 넘어가는 순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