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가 20일 채용 비리에 연루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간부 자녀 11명에 대해 임용 취소가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리고 전날 선관위에 공문으로 회신했다고 밝혔다. 따끔한 방향 제시다. 앞서 선관위는 비위 관련자의 채용 합격을 취소하는 국가공무원법 45조 3항의 적용에 대해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선관위는 유권해석 건과 별개로 최근 간부 자녀 11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른바 ‘아빠 찬스’ 파문에 대응하는 행보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굼벵이보다 느린 반응 속도를 보면 자정 의지가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소쿠리 투표’로 사퇴한 것이 3년 전이다. 선관위가 특혜 채용을 인정한 것도 1년 8개월이나 됐다. 선관위는 그런데도 자체 감사위원회 도입 등 개혁 흉내만 냈을 뿐 재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단호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뒤늦게 움직이는 것은 근래의 충격이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발언 파문 등이다.
감사원은 얼마 전 10년간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총 878건의 규정 위반이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악취를 풍기는 정도가 아니다. 선관위는 ‘특혜 채용’을 폭로하는 투서를 받고도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은폐 습성이 구조화됐다는 뜻이다. 직원들끼리 면접 점수를 조작한 사례 등도 들통났다. 동료 자녀를 합격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들 면접위원을 직접 고른 고위직도 있다. 심지어 감사원 조사에선 “선관위는 가족회사다”, “친인척 채용 전통이 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철저히 썩었다는 방증이다. 이 정도라면 조직을 없애거나 전면적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난 6일 국회 상임위 증인으로 출석한 간부들은 책임 회피로 일관하며 “자녀 사퇴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설상가상인 것은, 이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감사원의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이 권한 침해라는 결정을 내놨다는 사실이다. 이번 결정대로라면 선관위는 외부 기관의 통제나 견제를 받지 않는 ‘치외법권’이 될 수밖에 없다. ‘가족회사’가 되든, ‘아빠 찬스 집단’이 되든 알아서 하도록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외부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모든 조직은 썩는 법이다. 강력한 권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근현대 사회가 전근대와 달리 국가 권력의 작용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나누고 견제와 균형을 유지토록 한 것은 바로 그래서다. 선관위 홈페이지 또한 “상호 견제를 통해 권력이 균형을 이룰 때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관위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비대한 가족회사가 돼 가고 있다. 이게 현대국가의 모습인가.
선관위 문제는 ‘아빠 찬스’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관위의 본분인 선거 관리의 투명성 등으로 비화할 수밖에 없다. 강력한 외부 감사 시스템 도입이 절실하다. 비대한 조직을 대폭 축소해 비리가 싹틀 수 없게 개혁하는 일도 시급하다. 여야는 어찌해야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관리하는 기구가 악취를 풍기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선관위가 위기 때마다 자정 시늉이나 하게 내버려 둬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