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DJ정부 시절 강력한 정부 지원에 힘입어 IT강국으로 도약했지만 각종 규제에 가로 막혀 혁신이 어려워지면서다. 여기에 인공지능(AI)시대에 들어서면서 주도권을 잡지 못해 위기론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24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플랫폼 경쟁촉진법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창업자, 공동 창업자 106명 중 52.8%는 플랫폼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대로 14.1%만이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법안으로 중소 플랫폼을 보호하고 산업 생태계 발전을 촉진할 것이라는 주장과 반대된다. 자국 플랫폼을 지켜낸 몇 안 되는 국가인 우리나라는 플랫폼법 도입이 우리나라 플랫폼과 IT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모습이다.
2025년 규제의 칼날은 1998년, 혁신의 봄을 열었던 DJ정부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 DJ정부는 외환위기 속에서도 IT 산업을 국가 생존 전략으로 선택해 벤처붐을 일으켰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구축(전국 144개 지역 광케이블망)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에 따른 활성화 정책 △전자정부 추진 등을 중심으로 당시 스타트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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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네이버는 1999년 검색 서비스를 출시해 지금까지 국내 검색 시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엔씨소프트는 1998년 '리니지'로 게임 업계의 판도를 바꿨다. 또 ‘규제 샌드박스’ 개념을 선제 적용해 현재 네이버와 카카오의 핀테크 사업 확장 토대를 만들었다. 1999년 전자서명법 도입 당시 기존 금융 규제를 유예하며 전자상거래 기반을 구축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IT 기업들은 이들을 둘러싼 규제와 불확실성에 가로 막혀 혁신에 도전하는 벤처정신이 사라진 상태다. 국내에서는 규제 장벽이 높은 탓에 창업자들은 규제가 적고 투자 기회가 많은 미국으로 떠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벤처투자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등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스타트업은 186곳으로 10년 전인 2014년 32곳 대비 약 6배 늘어났다. 심지어 퓨리오사AI와 같이 능력 있는 국내 스타트업은 열악한 국내 지원 환경에 버티다 해외 매각을 검토하기도 했다.
실제로 스타트업 생태계는 국내 규제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짙다. 스타트업얼라이언이 스타트업, 투자사 등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 330명에게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자 60%(198명)이 ‘스타트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막는 규제 및 정책’이라고 대답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맥킨지는 규제 현대화를 통해 2040년까지 한국 국내총생산(GDP)을 1조 달러 증가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개혁 없이는 2031년까지 한국의 성장 잠재력이 회원국 중 최하위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 큰 문제는 주저 앉은 혁신 동력 탓에 AI 시대에서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국내는 IT 기업들이 성장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더군다나 AI 스타트업이 살아남기에는 규제 불확실성이 크다”면서 “AI는 국가 안보와도 직결돼 있어 국가 경제 주권 차원에서 규제 중심에서 진흥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