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리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은 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매수하려던 분이 잠깐 멈추고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 시행 이후에 다시 보자는데 집주인이라고 안 깎고 버티겠어요?"(서울 용산구 H 공인중개업소 관계자)
정부가 서울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구)와 용산구 내 2200개 아파트 단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24일부터 시행을 예고하자 일선 부동산 시장은 규제 '디데이(D-day)'를 앞두고 격동했다. 지난달 13일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토허제 해제 이후 매주 집값이 치솟았던 지역에선 집주인들이 호가를 한껏 높여 불렀지만, 규제 확대·재지정이 전격적으로 결정되면서 되려 매도를 서둘러야 하는 집주인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19일 강남 3구와 용산구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잠실과 용산구 일대 급매물 가격은 급락했다. 전용면적 84㎡형을 기준으로 수천만 원에서 최대 2억 원까지 몸값을 낮추고 거래를 서둘러달라는 집주인들의 요청이 많다는 것이 대다수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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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매물을 주로 다루는 E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달 토허제 해제 이후 집주인들은 매수 희망자들이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매도 호가를 높였었는데 토허제 시행 발표 직후부터 집주인으로부터 '팔아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며 "국민 평형 기준으로 30억 원 아래로 호가가 떨어졌고 29억5000만 원, 29억 원 등에 등록됐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 B형 한 가구는 최초 매도 호가 33억 원에 등록한 뒤 21일 1억 원 낮춘 32억 원에 재등록했다. 이날 기준 같은 평형의 가장 저렴한 매물은 28억 원으로 모두 토지거래허가제 지정 발표 당일인 19일 이후 등록된 것으로 확인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새롭게 지정된 용산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촌동 S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중에서도 전세 낀 물건을 빨리 팔아야 하는 집주인들이 매매를 서둘러달라고 난리다"라며 "특히 매수자랑 어느 정도 얘기가 되던 것이 (규제 발표로) 멈추면서 집주인들 마음이 급해졌고 주변 단지 전용 84㎡형 기준으로 5000만~1억 원 정도 호가가 빠졌다"고 했다. 실제로 이촌동 '강촌아파트' 전용 84㎡형은 기존 호가 22억 원에 등록 뒤 21일 1억 원 내린 21억 원으로 매도 호가를 정정했다.

급매에 나선 집주인과 달리 매수인은 느긋한 상황이다. 갭투자자가 아닌 이상 토허제 시행 이후 매도가 더 까다로워지는 만큼 매도 호가가 더 하락할 것으로 보고 관망세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용산구 이촌동 H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매수 조율하던 게 3~4건 정도 됐는데 지금 '올스톱'이다. 매수자들이 토허제 시행 이후에 다시 얘기하자는데 어쩌냐. 여기 주변에 중개업소만 50곳이 넘는데 오세훈 시장 한 마디에 다 굶어 죽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오락가락'하는 서울시와 정부 정책에 염증을 느낀다는 반응도 나온다. 잠실동 트리지움 인근 D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잠실은 5년이나 토허제가 진행됐고 잠깐 해제됐을 때 거래가 몰려 상승세가 유독 커 보인 거다. 지난해 말까지 주변 열 곳 중 세 곳만 거래가 됐고 나머지는 공쳤다"며 "잠실도 평당 1억 원 가까이 올라 외부에서 진입하기 어렵고 내부 갈아타기 수요만 남아 거래량은 줄어도 가격은 고가에 거래돼 실거래가는 결국 오르는 구조다. 규제로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결국 토허제 시행 이후인 24일 뒤로는 급매물 소화가 끝난 이후라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급할 게 없다"며 "거래량은 줄어도 신고가는 계속되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