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주재로 지난주 열린 ‘가계부채 점검 회의’에서 5대 은행 측은 서울 주요 지역의 주택거래 건수와 가격 상승이 포착되는 만큼 ‘매수심리 확산 가능성’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대출 문턱을 높이라는 주문을 받은 셈이다. 금융당국은 “당분간 가계대출 가산금리 인하 요청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주 회의가 눈길을 끄는 것은 금융당국이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를 은행권 대출금리에 반영하도록 압박하며 가계대출 수요를 자극한 것이 바로 지난달의 일이어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이제는 대출금리에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튿날 “지난해 10월 이후 세 차례 인하된 기준금리가 가계·기업 대출금리에 파급된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겠다”며 가산금리 조사 방침까지 시사했다. 그래 놓고 이번에는 다른 메시지를 던졌다.
당국의 지난달 지침과 지난주 메시지는 약간 어긋나는 정도가 아니다. 양립 불가에 가깝다. 지난달엔 ‘동쪽으로’를, 지난주엔 ‘서쪽’을 가리킨 것이다. 물론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로 방아쇠가 당겨진 서울·수도권 집값 상승세를 잡기 위한 긴급 변침으로 해석될 여지는 있다. 하지만 선호 부동산은 이미 지난해부터 심상찮은 조짐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부동산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대출 관련 정책과 지침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침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따로 없지 않나.
문제의 근원이 부동산 심리인지도 사실 의문이다. 정부의 어설픈 개입이 진정한 화근인지도 모른다. 정부가 무절제하게 정책금융 보따리를 풀고 대출 규제를 연기한 탓에 가계대출이 부풀었다는 정황 증거가 많다. 20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38조2833억 원으로, 2월 말(736조7519억 원)보다 1조5314억 원 늘었다. 눈여겨볼 대목은 올해 들어 이날까지 정책대출을 뺀 가계대출 잔액(635조1153억 원)은 작년 말(640조1319억 원)보다 5조 원 넘게 줄었다는 점이다. 정책대출 상품인 디딤돌(주택구입)·버팀목(전세자금) 대출, 지난해 신설된 최저 금리 1%대 신생아 특례대출 수요 등이 대출 폭등의 불쏘시개가 됐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부동산 바람도 무관할 리 없다.
국가적 우환거리인 가계부채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금리를 올리고, 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원망의 소리가 나오더라도 빚더미 민생·국가를 구하려면 빚을 내기 어려운 환경을 일관성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영끌’, ‘빚투’ 현상도 퇴치된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올해 정책대출을 전년 수준인 약 60조 원대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난주엔 대출 억제 카드를 집어 들었다. 당국은 앞뒤가 맞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컨트롤타워가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산업 선진화와 시장 안정을 꾀하는 기구다. 그런데도 본래의 소명을 잊고 관치금융 본능에 휘둘려 냉·온탕을 오가는 엇박자 정책을 일삼으면, 가계부채 심각성을 키우고 부동산 시장 혼란을 부추기게 된다. ‘샤워실의 바보’ 노릇은 접을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