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중요한 것은 관세 전쟁이 글로벌 경쟁 구도의 전환기에 효과적인 미래 전략인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경쟁 구도가 글로벌 밸류체인(GVC)에서 혁신생태계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태에서 관세 전쟁은 GVC 시대의 유물이 될 수 있다.
GVC는 국가 간 분업을 통해 비용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생산 네트워크이다. 지난 30년간 세계화의 과정은 GVC를 통해 비용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 생산비 절감을 실현했다. 각국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글로벌 분업체계는 모든 국가에게 일정 정도의 과실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 과실이 국가 내에서 분배되는 것은 균등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감소하여 노동자들은 취약해졌지만, 글로벌 기업의 임직원들은 소득이 늘면서 양극화를 키우고 정치적 불안을 가져왔다. 또한 코로나19는 생산 공장이 중국에 집중된, 긴 공급망에 의존하는 최적화된 GVC가 각국의 위기관리와 회복탄력성에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GVC에 대한 재검토와 회의론이 제기되었다.
GVC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편으로 첨단 기술 산업의 부상은 경쟁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국가와 기업은 “생산 효율성 중심의 글로벌 분업체계”에서 “지역 기반 혁신생태계 구축”을 통한 경쟁력 확보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공급망 재편을 넘어, 디지털과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중심 산업구조로의 전환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하드웨어(HW) 중심 생산체계에서 SW·플랫폼 기반 가치창출로 전환되며, ‘연구개발(R&D)·생산·소비’의 통합적 협력체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미국·중국 간 기술 격차 해소 및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술 패권 경쟁은 혁신생태계 경쟁을 더 촉진하고 있다.
혁신생태계는 R&D, 생산, 소비가 밀접하게 연결된 지역 중심의 협력 시스템이다. 지식 창출→상용화→시장 진출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인프라, 제도, 인적자본, 시장의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시스템이다. 특히 인프라(연구기관, 테스트베드 등)와 인적자본(글로벌 인재풀, 창업 등), 시장연계(벤처 투자, 산학협력,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등)의 효율성과 혁신성을 높이는 제도와 정책이 중요하다. 대만의 TSM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설계·제조의 통합은 혁신생태계의 성공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및 AI 규제는 역으로 중국의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 AI 생태계 조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반도체 생산 시설을 미국에 이전한 것은 패착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도체 설계·제조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국내 R&D 클러스터와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주력해야 하는 시점에 생산 시설 이전이 먼저 추진되었다.
GVC 시대에 핵심 자원은 노동력과 자본 집약, 가치 창출은 비용 절감, 공간 구조는 분산형 글로벌 네트워크의 형태로 최적화를 추구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혁신생태계 시대에는 핵심 자원이 지식과 인재, 가치 창출이 기술 표준 주도권 확보, 공간 구조가 집적형 지역 클러스터로 바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은 GVC 시대의 과도기적 전략에 불과하다. 관세 같은 과거형 무역정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첨단산업 중심의 혁신생태계 경쟁이 더 중요하다.
혁신생태계는 개방성과 집적성의 새로운 균형을 요구하고 있다. 연구와 ‘테스트 베드-생산시설’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기술 혁신의 가속화를 더 이상 분산된 GVC로는 대응할 수 없다. 빠른 기술 속도에 맞춰 빠른 상용화를 위한 혁신생태계 구축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미래 경쟁력은 단순 생산비 절감이 아닌, 지식과 생산 네트워크의 밀도와 속도에서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