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가 24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파면 요구를 기각했다. 헌재 선고가 나온 직후 한 권한대행은 곧장 서울정부청사로 출근해 권한대행 업무에 돌입했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 탄핵소추 이후 88일 만이다.
한 대행은 외교·안보, 트럼프 2기 행정부발(發) 통상전쟁, 의료·연금 개혁, 전국적인 산불 등 시급한 현안을 챙기면서 국정운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등을 둘러싸고 야당과 강대 강 대치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 정국 불안이 쉽게 가라앉긴 어려울 전망이다.
한 대행은 이날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기각 결정을 받은 직후 오전 10시 21분께 총리 관저에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해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 우선 급한 일부터 추슬러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앞장서서 통상과 산업의 담당 국무위원과 민간과 같이 민관 합동으로 세계의 변화에 대응, 실천하고 지정학적 대변혁의 시대에 대한민국이 발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국무위원과 정치권과 국회, 또 국회의장님과 모두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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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한 대행은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 관련 이슈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행은 "오후에는 큰 산불로 인해 고통받고 계신 분들을 뵙고, 특히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제가 직접 손으로 위로의 편지를 드렸다"며 "정말 가슴 아픈 일이고 그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고위급 통화 등 트럼프 행정부와 직접 소통 등 외교에도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선 뒤 세계 주요 국가가 미국과의 외교 스킨십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한국은 탄핵 정국으로 인한 리더십 공백에 외교 난맥상이 이어졌다. 실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한 대행의 복귀로 정상외교를 완전히 정상화하긴 어렵더라도 그간 벌어진 외교 틈새를 복원할 수 있을 정도의 대응력은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를 예고한 '더티 15'(상호 관세 명단)에 우리나라가 포함될 가능성과 대응 전략에 대한 구상도 필요한 상황이다.
연금개혁과 의료개혁 역시 넘어야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의대생이 전원 복귀할 경우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이전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대학들이 미복귀 학생에 대한 제적 조치를 예고하고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일부 대학에선 재적생의 절반가량이 복귀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쟁, 상법 개정안의 거부권 행사 여부 등 현안 역시 산적하다. 탄핵정국으로 심화한 정치·사회적 분열을 통합할 수 있는 행보 역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한 대행의 복귀에도 정국 혼란이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 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야당과 대립각을 세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앞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한 대행이 복귀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또다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압박하면서 탄핵인질극을 반복할 것"이라며 "탄핵 중독이라는 집단 광기가 하루아침에 고쳐질 수가 없다"고 우려한 바 있다.
만약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가까운 시일 안에 털어내지 못할 경우 마 재판관 임명에 대한 한 대행의 부담은 상당할 전망이다. 이날도 한 대행은 청사 출근길에서 마 후보자 임명 여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마 후보자 임명 문제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결과와 시기를 바꿀 최대 변수로 꼽힌다.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김건희 여사 상설특검법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설특검인 만큼 거부권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한 대행이 특검을 임명해야 출범이 가능해 민주당의 압박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각에선 한 대행이 복귀했다고 하더라도 헌재가 윤 대통령을 파면 결정할 경우 임기 두 달짜리 시한부 권한대행이 되는 만큼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68조 2항은 대통령이 파면된 경우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선고 직후 정국이 곧장 대선국면에 돌입하면서 한 대행이 이 기간 의미 있는 국정운영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