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논란, 아베 전 총리 총격사건으로 가시화
교단 측, 즉시 항고할 방침 밝혀...최종 결론 시간 걸릴 듯

일본 법원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에 해산 명령을 내렸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총격 사건으로 불거진 고액 헌금과 관련한 민법상 불법행위가 해산 요건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다만 가정연합에서 즉시 항고할 방침을 밝히면서 최고재판소(대법원) 최종 결론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2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지방법원)은 이날 일본의 종교법인법에 근거해 해산 명령을 내렸다. 종교법인법은 ‘법령을 위반해 현저하게 공공복지를 해칠 것으로 분명히 인정되는 행위’나 ‘종교단체 목적을 현저히 벗어난 행위’가 있는 경우, 법원이 해산을 명령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스즈키 겐야 재판장은 결정 이유에서 “신자들에 대한 기부 권유로 인해 유례없는 수준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교단이 2009년 ‘컴플라이언스 선언’을 통해 활동을 재검토했다고 주장했지만, 이후로도 같은 행위가 계속됐으며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며 “이는 법령을 위반하고 공공의 복지를 현저히 해친다”고 설명했다.
컴플라이언스 선언은 조직이 법률과 규정을 준수하겠다는 공식적인 선언을 가리킨다. 문제가 된 단체나 과거 법적 논란, 사회적 비판을 받았던 경우 이미지 개선 및 내부 개혁을 목적으로 이런 선언을 발표하는 경우가 있다. 스즈키 재판장은 “근본적인 대책도 강구하지 않고 불충분한 대응에만 머물렀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해산 명령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가정연합의 고액 헌금 문제는 2022년 7월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총격 사건을 계기로 가시화됐다. 당시 체포‧기소된 암살범 야마가미 테츠야는 자신의 모친이 가정연합에 1억 엔(약 9억7600만 원)을 기부하면서 생활이 곤궁해졌고, 이에 교단에 원한을 품게 되는 등 암살 동기를 밝히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이미 1980년부터 교단에 의한 ‘영감상법’이나 기부 권유는 문제가 돼왔다. 영감상법은 영적 공포심이나 죄책감을 조성해 고가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강매하는 행위다. 즉 종교적 믿음을 악용한 불공정 상행위로, 일본에서는 규제 대상이다. 문부과학성은 가정연합에서 해당 문제가 지속되자 2022년 11월부터 조사를 시작, 2023년 10월 해산 명령을 청구했다.
이후 약 1년 3개월간 비공개 심리가 이어졌다. 현역 신자나 전 신자 등이 출석해 헌금한 경위나 실태 등을 진술하기도 했다. 쟁점은 민법상 불법행위가 해산명령 요건에 해당하느냐로 좁혀졌다. 문부과학성은 고액 헌금에 민법상 불법행위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교단은 해산 요건에 민법상 불법행위가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목적을 벗어난 행위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신자들의 기부 권유에 대해 가정연합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민사 판결이 32건이며, 피해 규모는 204억 엔에 이른다며 해산 명령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본 정부는 2022년 10월 민법상 불법행위라도 조직적이고 악질적이며 지속적인 경우 해산 명령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명령이 확정되면 교단은 법인 자격을 잃고 청산 절차에 돌입한다. 그러나 가정연합 측이 즉시 항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최종 결정에는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일본에서 법령 위반으로 종교 해산 명령이 내려진 것은 가정연합이 세 번째이며, 민법상 불법행위가 근거가 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종교법인법 위반으로 해산명령을 받은 사례는 도쿄 지하철역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을 일으킨 1996년의 옴 진리교 등 2건이다. 해산 명령이 떨어지면 세제상 우대를 받을 수 없고 임의 단체로 종교 활동만 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