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난리에도 담배꽁초 '툭'…다시 떠오른 '안전불감증' 사회 [이슈크래커]

입력 2025-03-27 17:19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찔끔 내린 비가 야속합니다.

영남권 곳곳에서 산불이 발생한 지 엿새째, 27일 대구·경북에 처음으로 5㎜ 미만의 비가 내렸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내린 비의 양으론 산불 진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전망인데요. 임상섭 산림청장은 이날 정기 브리핑에서 "비의 양이 적어 진화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는 수식어도 붙을 만큼 불은 빠르게 번졌고 피해도 커졌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현재 진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대형 산불 지역은 모두 10곳으로, 피해 산림 면적은 3만6009ha(약 10만8900평)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면적 2만3794ha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인명피해는 사망 27명, 중상 8명, 경상 22명 등 총 57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산불로 인한 사망자 수는 산림청이 산불로 인한 인명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7년 이후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1989년(26명)을 이미 넘어선 상황입니다.

대부분 지역에서 완전 진화에 애를 먹는 만큼, 피해는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역별 진화율을 보면 산청·하동 77%, 의성 54%, 안동 52%, 청송 77%, 울산 울주 온양 76% 등입니다. 의성에서 난 산불이 확산한 영덕은 10%, 영양도 18% 수준에 그쳤죠.

불의 'ㅂ'자만 봐도 진저리가 날 상황, 여전히 화재 위험을 간과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포착돼 공분이 일고 있습니다.

▲26일 대형 산불로 전소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비롯해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연수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가 불탔다. (뉴시스)
▲26일 대형 산불로 전소 피해를 입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비롯해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연수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가 불탔다. (뉴시스)

가족 잃고, 천년고찰 불탔다…눈물만 삼키는 피해자들

중대본에 따르면 21일부터 발생한 중·대형 10개 산불로 인해 27일 오후 2시 기준 전국에서 27명이 사망하고 30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층인 피해자들이 다수로, 주택, 마당, 도로 등에서 급속도로 번지는 불길을 피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 중이었는데도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는 불길을 미처 탈출하지 못해 사망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추측되죠.

이번 산불로 문화재 피해도 잇따랐습니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최근 발생한 산불로 국가유산에서 피해가 확인된 사례는 총 18건으로 집계됐는데요. 전날 오후 5시 기준 15건에서 3건이 더 추가된 것이죠. 연일 진화 작업이 계속되면서 피해 사례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북 의성 고운사는 화마에 휩싸여 전소됐습니다. 스님들의 고군분투로 석조여래좌상, 탱화 등 문화유산 41점은 미리 옮겨져 화를 면했는데요. 국가지정 보물인 연수전, 가운루가 전소되는 등 경내 대다수 전각이 잿더미로 변했죠. 신라시대인 서기 68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이 절은 경북을 대표하는 '천년고찰'로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였습니다.

고운사의 도륜 스님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스님들과 문화재를 옮기다가 오후 5시 30분께 인명 피해가 나면 안 되니 철수하라고 해서 끝까지 남아 있다가 철수했다"며 "문화재가 손상되면 세월을 복원할 수 없기 때문에 지켜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했는데요.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도륜스님은 "천년고찰을 이어왔는데 우리 대에서 부처님 전각을 잃어버리게 돼 정말…"까지 말하고 고개를 떨군 뒤 목이 멘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청송 송소 고택과 서벽고택 일부도 불에 탔고, 사남고택은 불길을 피하지 못해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상남도가 문화유산자료로 지정한 하동 두방재가 부속건물 2채가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죠.

이 밖에도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측백나무 자생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천연기념물 '안동 구리 측백나무 숲'의 0.1㏊ 범위가 소실, 소나무 등이 피해를 봤고요. 명승으로 지정된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일원' 일대에서도 일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청장과 본청 간부 등을 포함해 유산 현장에 750여 명을 투입해 화재 예방 등을 위한 긴급조치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긴급한 대피 상황 속 반려동물들의 모습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실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반려견의 목줄을 미처 풀어주지 못해 동물이 불에 타 죽거나 굶어 죽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동물단체가 구조한 재투성이 반려동물들의 모습도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두고 온 강아지들이 마음에 밟혀 연기가 몰아치는 집으로 돌아간 경남 산청 주민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죠. 다행히 주민도, 반려견들도 무사히 불길을 피했다고 합니다.

▲26일 경북 의성군의 한 마을에 산불조심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6일 경북 의성군의 한 마을에 산불조심 현수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올해 산불, 대부분이 '실화'였는데…여전한 '안전불감증'

번지는 산불과 함께 안타까운 피해가 속속 전해졌지만, 일각에서는 화재 위험성에 대해 별 우려를 하지 않는 상반된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26일 다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큰 화재로 번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확산했는데요.

인천 강화군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A 씨가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이 영상에는 도로 옆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는 한 남성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이 남성은 담배꽁초를 그대로 땅에 던진 뒤 유유히 자리를 떠났는데요. 담배꽁초가 버려진 자리에서 이내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금세 불이 붙었죠. 불은 마른 잡초를 태우면서 순식간에 커졌는데요. 이를 본 또 다른 남성이 황급히 땅을 짓밟으며 불을 끄려고 시도했지만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 여성이 호스를 끌고 와 물을 뿌리고, 지나가던 다른 시민들도 가세해 진화 작업을 벌이면서 다행히 사고를 막을 수 있었죠.

A 씨는 "작은 담뱃재가 큰 화재로 번지는 순간을 포착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며 "다들 도와주신 덕분에 안전하게 화재를 진압했다"고 전했는데요. 그는 "전국에 화재 소식이 많다. 자나 깨나 불조심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죠.

전국 곳곳에서 산불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아무런 경각심 없이 담배꽁초를 버려 불을 낸 모습은 네티즌들의 경악을 자아냈습니다.

실로 최근 발생한 산불 대다수가 사람 실수에 의한 '실화'로 추정됩니다. 22일 경북 의성에서 처음 발생한 산불은 성묘객 실수로 난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라이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발생한 작은 불꽃은 돌풍을 타고 의성은 물론 안동 일대를 집어삼켰습니다.

같은 날 울산 울주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용접 불꽃이 원인으로 보이고요. 경남 산청군 산불은 예초기 작업 도중 튄 불꽃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옥천은 쓰레기 소각, 김제는 성묘객 실수, 전북 순창 산불은 입산자의 담뱃불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등 올해 발생한 산불 대부분이 사람 실수로 발생했죠.

최근 산불만이 아닙니다. 정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5~2024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 71%가 입산자 실화, 쓰레기 소각 등 개인 부주의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봄철은 건조한 기상 상태로 인해 식물이 바짝 마른 데다 강한 바람까지 불어 산불이 발생하기 쉬운 시기인데요.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국에서 연평균 약 546건의 산불이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55.5%가 봄철에 집중됐습니다. 월별로는 3월(25.4%)과 4월(20.7%)의 비율이 높았죠.

여기에 최근 며칠 사이엔 평년보다 낮 기온이 크게 높아지면서 더욱 건조해져 불이 쉽게 붙고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7일 오후 지리산국립공원 인근지역인 산청군 시천면 동당마을 뒷산에 난 산불이 마을쪽으로 향하자 주민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27일 오후 지리산국립공원 인근지역인 산청군 시천면 동당마을 뒷산에 난 산불이 마을쪽으로 향하자 주민들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불법 소각도 여전…"장비와 인력 철저히 점검, 대응체계 보완할 것"

그러나 농가에서는 여전히 영농 부산물 등을 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농철을 앞두고 지난해 가을걷이 후 그대로 논밭에 버려진 비닐, 농약병 같은 쓰레기, 농업 부산물을 태워버리는 건데요. 이 불법 소각 행위는 봄철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까지 지목됩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것부터 폐기물 소각까지, 본인의 가벼운 행동이 대형 산불을 낼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실수로 불을 냈더라도 책임을 피할 순 없습니다. 형법 제170조는 과실로 타인의 건물, 기차, 전차, 자동차 등을 불태운 자에 대해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합니다. 즉, 일반적인 실화자의 최대 형량은 1500만 원 벌금형이죠.

산불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는데요. 산불을 실수로 냈다면 산림보호법 제53조 제5항이 적용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됩니다. 만약 고의가 있는 산불 방화범이라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량이 무거워집니다. 산림보호법 제53조에는 타인 소유 산림에 불을 지른 사람은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자기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른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각각 처하도록 규정돼 있죠. 산림이나 산림 인접 지역(산림에서 100m 이내)에서 불을 피우거나 불을 가지고 들어간 경우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산림 당국과 각 지자체도 안전문자 발송, 산불 감시원 파견 등을 통해 산불 발생을 막아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요. 이번에 경북 북부권을 휩쓴 대형 산불의 경우 불길이 지자체 경계를 넘어오기 직전 대피 문자를 발송하거나 대피 장소를 안내한 지 5분여 만에 장소를 변경하는 등 뒷북 대응, 체계 없는 재난문자 등으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산불 감시원, 산불전문예방진화대는 재정 일자리 사업으로 추진돼 지역사회 고령 인력이 주로 채용되기에 사실상 봄, 겨울철 특정 시기 국한된 저임금 고령층 일자리로 치부되죠.

이에 인력과 장비 확충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역시 26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이번 재난이 지나가면 (지금까지) 우리가 국토를 관리해 온 방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며 "관련 장비와 인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철저하게 점검하고 대응체계와 자원을 철저하게 보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당국의 분석 및 보완과 함께 국민적인 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은 26일 YTN 라디오 '이익선, 최수영의 이슈앤피플'을 통해 "온 국민이 산불을 방지하고 진화하기 위해 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있다. 하나는 봄이 되면 건조한 강풍이 부는데, 이때 산불이 날 수 있는 불씨를 갖고 무슨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두 번째론 건조한 강풍이 불면 물 뿌리기를 시작해야 한다. 또 세 번째는 산불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 산불을 지휘하는 리더 그룹, 행정지원 그룹 모두가 의무적 교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르포] ‘AGV’가 부품 95% 배달…미래 모빌리티의 요람 ‘HMGMA’
  • '연금 사수' 앞장서는 86세대, 실상은 '가장 부유한 세대'
  • 213시간 만에 잡힌 산청 산불...경북 재발화 우려에 주민대피령
  • ‘정산지연’ 명품 플랫폼 발란, 결제서비스 잠정 중단
  • 박찬대 “내달 1일까지 마은혁 미임명 시 중대 결심”
  • '그알' 교사 명재완, 왜 하늘이를 죽였나…반복된 우울증 '이것'일 가능성 높아
  • 지드래곤 측, 콘서트 70여분 지연에 재차 사과…"돌풍에 의한 안전상 이유"
  • 창원NC파크서 '구조물 추락 사고'…관람객 1명 중환자실 치료
  • 오늘의 상승종목

  • 03.28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24,550,000
    • +0.19%
    • 이더리움
    • 2,750,000
    • -1.65%
    • 비트코인 캐시
    • 459,600
    • +0.79%
    • 리플
    • 3,247
    • +3.61%
    • 솔라나
    • 188,200
    • -0.21%
    • 에이다
    • 1,019
    • +0.69%
    • 이오스
    • 883
    • +6%
    • 트론
    • 346
    • -1.14%
    • 스텔라루멘
    • 403
    • +1%
    • 비트코인에스브이
    • 48,190
    • +0.35%
    • 체인링크
    • 20,550
    • -0.53%
    • 샌드박스
    • 412
    • +0.49%
* 24시간 변동률 기준